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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건강

김인택 | 2013-05-25 12:04:53

조회수 : 2,095

소중한 건강

김태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곤 한다. 특히 나처럼 나이가 들고 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낀다.

최근 나는 좁아진 심혈관(心血管)에 스텐트를 설치하는 시술(施術)을 받았다.

매년 받는 종합건강검진에 위내시경, 심전도, 복부초음파 검사가 포함되지만 가끔 추가검사도 필요한 것 같다. 재작년에 대장내시경, 작년에 경동맥(頸動脈)검사 결과 ‘이상무’였다. 그래도 주변의 친지 중에 심혈관 스텐트, 심장판막(瓣膜) 수술, 심장박동기(搏動機), 심지어 심장이식(移植) 수술 받은 이들을 보면서 나는 괜찮은지 궁금하였다.

뚜렷한 증세는 없지만 가끔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심장검사를 받아보고 싶었다. 금년 초 동네병원에서 초음파검사로 심장판막에 이상이 없다고 들었으나 미심쩍어 의사인 아들과 상의한 결과 그 친구인 심장내과교수한테 4월 중순 심혈관조영술(心血管照影術)을 받게 되었다. 내심 “괜찮다”는 결과를 기대하며 손목에 주삿바늘을 꼽고 수술대에 누웠는데 심혈관 세 가닥 중 하나가 80%쯤 막혀 있어 스텐트를 시술하느라 약40분 걸렸다.

협심증(狹心症)을 모르고 지내다가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었다니 내가 아직 이 세상에 할 일이 남아있는 것인가? 용케 검사를 받아 조치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에 하루씩 묵다가 퇴원한 뒤 혈관이 재차 막히지 않도록 매일 약을 먹는다. 특히 6개월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 특별한 지장은 없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비상약을 지니고 다닌다.

이 일을 겪으면서 건강에 대한 나의 생각과 건강관리를 되돌아보았다.사람의 건강과 수명은 다음 몇 가지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첫째는 본인의 섭생(攝生), 즉 건강관리이다. 규칙적인 생활, 꾸준한 운동, 술과 담배 등이다. 다음은 평소의 식생활 습관이다. 무슨 음식을 얼마나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건강이 좌우된다. 그리고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에서”란 말이 있듯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 평소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사느냐 미움, 원망, 성낸 마음으로 사느냐가 건강을 좌우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도 크지만 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내 부모님은 모두 80대 초반까지 사셨다.

나는 10대에 3년간 폐결핵을 앓았는데 어른들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또 어려서부터 소화기관이 부실하여 종종 설사 등 배앓이를 하였다. 따라서 나는 ‘허약한 사람’으로 자처하여 평소 내 몸을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소중하게 조심하며 관리해왔다.

첫째 규칙적 생활에 유의하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샘을 하지 않고 가급적 취침과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지켰다. 새벽의 보건체조와 취침 전의 양치질을 꾸준히 했다. 이처럼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로 건강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둘째 음식은 채식을 위주로 육류와 생선을 곁들였고, 과식(過食)과 야식(夜食)을 피했다. 근년에는 다양한 채소와 현미밥, 고구마, 과일 등을 즐겨 먹는다.

셋째 담배는 안 피우고 술은 최소한으로 마셨다. 폐결핵으로 죽다 살았으니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당연하고, 술은 대학시절까지 입에 대지 않다가 사회에 진출한 뒤로 조금씩 마시지만 과음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사회생활에서 술자리를 피할 수는 없지만 요령껏 과음을 피한 결과 몸을 못 가누도록 취한 적이 거의 없다. 젊어서 호주(豪酒)를 뽐내다가 중년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사례를 여럿 보았다.

넷째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였다. 결혼 전에는 부모형제와, 결혼 후에는 부부자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여 밝고 명랑한 가정을 이루기에 힘썼다. 특히 30대에 영국출장과 영국인들과 함께 한 사택생활로 그들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가사(家事)를 분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네 가부장적(家父長的) 행태를 벗어나 친구 같은 부부관계를 이루려고 노력하였다. 그 밖에 동창, 직장 선후배, 기타 가까운 인연들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맺도록 유의하였다. 가족, 친지,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지면 갈등이 해소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서 건강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나는 10대 때 폐결핵이 심해서 중2부터 고1까지 내리 3년간 학교를 쉬었다. 6.25 전시였던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고향 예천의 집에서 거의 외출도 못한 채 틀어박혀 지냈다. 대구의 이모가 어렵게 구해준 미제 주사약 스트렙토마이신 약20병, 가루약 PASS 2병 외에는 한약 두 재를 먹은 것이 전부였다. 부모님 외에 어린 동생들에게 전염될까봐 조심스러웠고 고향의 옛 초등학교 친구들도 별로 만나지 못했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손바닥만한 화단을 가꾸고, 도토리에 글자와 그림을 새겨 트럼프를 만들고, 소나무 껍질로 배를 만들어 동생들에게 주는 소꿉장난이 고작이었다. 의사인 이모부의 엄명으로 공부는 아예 잊어버렸고, 읽을거리라곤 전시에 고향에서 나오던 등사판 ‘유사(類似)신문’과 숙부님 서가에 꽂혔던 의학대사전 정도 밖에 없었다. 마침 아버지가 빌려오신 한문판 ‘심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호기심으로 들쳐보다가 옥편을 찾아가며 독파하였다.

이 시절 부산에 피난 중이던 친구 B와의 꾸준한 편지교환은 나에게 큰 위안이자 분발(奮發)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수송(壽松)초등과 경기중(京畿中) 1학년 때의 단짝으로 부산의 경기중 피난학교 소식을 전해주었고 덩달아 다른 친구들과도 교신하게 되었다. 이 친구들과의 교신은 잠들었던 나의 학구열을 일깨워 수학,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해주었다.

3년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예천농고 2학년에 편입하였다. 전시 중 모두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할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복학을 1년여 앞두고 수학은 독학으로, 영어는 외숙한테 배웠다. 2km 남짓한 학교까지 걸어 다니기가 힘에 부쳤다. 농업 실습시간에는 논밭에서 일하는 대신 학교측 배려로 농구(農具)당번을 맡았다.

서울공대 입학 후 매학기 대학본부 등록시 흉부 x선검사의 간접촬영에 번번이 걸려서 불려가 직접촬영을 하고 먼젓번 필름과 대조한 뒤에야 통과되었다. 그 시절 교외에 있는 공대까지 먼 등하교길이 고역이었다. 주로 청량리역-신공덕역(경춘선) 사이는 오전 오후 1회씩의 통학열차를, 시내-청량리 사이는 만원전차를 탔다. 이렇게 통학에 편도 2시간 이상 걸려서 귀가하면 녹초가 되었고, 초저녁에 1시간쯤 잠을 자고나야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건강에 자신이 없어 술, 담배는 물론이고 체력과 돈이 드는 잡기(雜技)나 취미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고, 건장하고 스포츠에 능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졸업 후 약20년간 영등포, 부산, 울산, 여수공단에서 때로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작업복을 입고 공장건설과 운영에 종사할 때는 고되었지만 차차 건강이 회복되었고 산업전사로서 자부심을 가졌다. 부산에서 29살에 결혼하고 첫 딸을 낳자 어머니는 “이제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하고 안도하셨고, 이어 아들 둘을 더 낳았다. 당시 30-40대의 나는 키 171cm, 체중 60kg 정도였다.

40대 중반부터 환갑까지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서울에서 회사의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였다. 이후 분당의 우거진 산기슭에 이사하여 맑은 공기를 마시고 살면서 손자녀의 출생, 재롱, 진학 같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퇴직 후 에너지와 가스분야에 대한 투고와 저술, 다양한 역사책 등의 독서로 두뇌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요일이면 원불교 교당(敎堂)의 법회에 나가서 마음의 조화, 감사, 보은(報恩)을 배우며 익힌다. 뒤늦게 60대 후반부터 수년간 교당 등산반을 따라 가까이 불곡산에서 멀리 여수 향일암까지, 또 속리산, 내장산, 오대산을 오르내리며 몸을 단련하였다. 10년 전부터 수년간 동네 경로당 책임을 맡아 노인들 뒷바라지를 했고, 지금은 매주 1회 분당구청에서 민원인 안내봉사를 한다.

80을 앞둔 이제 중년 때에 비해 키와 체중이 약간씩 줄고 늘었지만 경미한 고혈압과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을 먹는 외에 시력, 청력, 치아는 비교적 괜찮아 건강한 편이다.

이상이 내 건강의 이력서와 현주소다. 앞으로 여명(餘命)이 얼마일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심신 건강하게 조용히 보람 있게 살다가 떠나고 싶다.                                                                                    (2013년 5월)

  • 감명깊게  건강 이력서 와 주소를 접했습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해탈 대자유경지에 몰입정진하시여
    여래로사시다가
    여래로가시고
    여래로오시는길 로 대준비 하시길  .
    이선조 | 13-05-27 10:24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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