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조 2013-07-18 08: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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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박정훈 종사님 !
교화부장님으로 발령 받으신날 밤
영모전 앞에 미륵처럼 앉으셔서
구수하게 숙성되신 목소리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시던
그 염불소리가
수도인의 일과가 흩어지려 할 때마다 개벽을 외치는 북소리 처럼 들려 왔었습니다.
서투른 생각으로 어른님들 의견에 이의를 대면
나는 한 번도 어른들이나 선진님 앞에서 대들거나 이의를 단일이 없었다.
오롯한 순종이 길게 교단의 힘이 된다. 하신 신봉정신!
교단에 국직한 선거가 있을 때
‘自認然後 人天認知“라 써주시며 스스로 적공실 으로 들어가셨지요.
7살 때 시작하셨다는 붓글씨! 날마다 書道一心정진 이였지요.
천도독경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 천도 독경 소리
그 소식 골골에서 영영한테 이제 그리 담담하게 가실 곳으로 가셨나이까?
보은 도리 못한 후진들 너무 죄송하고 미안 해서 눈물 흘립니다.
정산종사 법문 “한울안 한이치” 가 한글자도 오자가 없도록 하시기 위해
수백번의 교정을 하시던 그 정성과 바르게 스승님 법을 전 하시려던 그 신성!
정산종사 떠나신후 교단의 바른 법통을 이어가는 등대가 되어 대산종법사 법등으로 이어 진 길을
긴 밤 밝게 비춰 주시며 추모담 때마다 그분을 그리는 눈물이 숙연한 제자의길을 깨닫게 하셨지요
죽음길 준비하시는 편안열반 공부로 이어져
평소 생각하신데로 법회보러 온김에 이별하고 헤어지려 일요일에 발인하시게 되는 금요일에 가시나이까?
이산 박정훈 스승님
원칙을 튼튼히 매사를 꼼꼼히 주워진데로 열심히 죽기 살기 하자던 교화 현장에서의 품격높은 말씀들이
더 없이 그리운 때 100년 앞두고 매정히 가시다니 저희가 선진님께 향기고운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여 저어 됩니다.
마음공부 잘하여서 새세상의주인되자.고 가르침 받으신 그 말씀을 대중에게 바르게 전해주셨으니
저희는 행복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님 가시는 길 고개숙여 스승님은 영원한 정산종사의 일등 시자이셨다고
울먹 입니다. 지금 부터 꽃은 피어 날 것 입니다.
이산 박정훈 스승님 멋지게 가신길 허허하게 그웃음 가지고 다시오소서 1
-교화부근무시절 부장님으로 모시고 전주교구장님으로 계실때 서전주교당교무로 만났던 인연이
영겁주인 영겁법자의길로 함께 가며 또 뵙기를 기도 드립니다.
분당에서 이선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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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8일11시 종재 에 가실분 이선조 혹은 윤대기교무님께 신청 하시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종재끝난후 전주에 요양중인 준산 유한준 김도인 내외분 병문을 함께 할 예정 입니다.
교당에서는 8시에 출발 합니다.
이산 원정사님!
서울교구장님으로 근무하시던 시절, 이 교당 저 교당에서 설법을 청해오시면 저희들이 차로 모셔다 드린다고 하여도 혼자 갈테니 근무하라고 하시며 헌거롭게 홀로 떠나시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스승님의 그 소탈하신 자비성안을 언제 어디서 다시 뵈올 수 있을런지요.
스승님의 수첩에는 늘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교당을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미터 단위로 꼼꼼히 적혀있어 ‘어떻게 찾아가느냐, 또는 마중을 나와라’ 할 것도 없이 법회 준비로 분주할 교당의 조그만 짐까지 덜어드리려는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으셨습니다.
저희들은 스승님의 이러한 모습을 뵈올 때마다 ‘우리들의 작은 법력으로 스승님의 공부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중교통 이용에 대해서는 걸리고 막힘이 없으신 출가위시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 조금이라도 더 잘 모셨어야하는데 하는 마음이 지금에 와서야 가슴을 짓누릅니다.
이산 원정사님!
돌이켜보면 스승님의 얼굴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승님의 천진무구하신 그 환한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셨다는 정산 종사님의 미소와 참 많이도 닮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해맑디 해맑은 스승님의 그 미소가 평소 스승님께서 정산 종사님을 닮아가고자 일천정성을 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요.
정산 종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살면서 받들었던 법문들을 정리한 법어집 ‘한울안 한이치’나 정산종사 일대기로 써주신 ‘정산종사전’은 정산 종사님을 오롯하게 닮아가고자 했던 스승님의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 내신 결과물로 정산 종사님을 받들고 그 경륜을 이해하는데 있어 둘도 없는 교과서요 지침서가 되고 있나이다.
이산 원정사님!
생각해보면 제가 스승님을 곁에서 가까이 모시고 살았던 서울교구에 근무하던 지난 시간들은 스승님의 모든 것을 구전심수로 배울 수 있었던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부모님의 고향인 장성에서 가문의 어른이셨던 조선 명종조 때의 청백리 박수량의 백비 말씀을 종종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높은 벼슬을 하였으나 청백리로 일생을 살다가니 임금이 ‘비문이 도리어 누가 되니 비문을 적지 말라’며 백비를 하사하셨다는 이야기는 스승님의 표준이기도 하시고 저희들에게 그리 살라하는 가르침이셨습니다. 교구장님으로 부임을 하시자 전용차를 선물해 주시겠다는 교도님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사양을 하시고, 시봉금이 들어오면 한푼두푼 모아서 목돈을 만들어 교단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자상하신 스승님 이셨습니다.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종로신협이 문을 닫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울원음방송국을 세우라는 하명을 받들어 방송국을 개국하시던 일은 또 어떠하셨는지요. 당시만 해도 재가 출가 교도들의 마음이 아직 진정되기도 전이라 방송국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시시비비가 많이 따랐으나 “해와 달은 일을 하기 때문에 시시비비가 있으나 별은 일을 하지 않으므로 초롱초롱한 법”이라며 “사람이 일을 하는 가운데는 시시비비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를 잘 견딜 줄 알아야 한다” 하신 말씀은 교단의 연륜이 깊어가면 깊어갈 수록 더욱 더 되새겨지는 말씀입니다.
이산 원정사님!
근산 종사님을 앞뒤로 모셨으니 종사님과 저는 사형 사제 간이라는 버릇없는 농담에도 잔잔한 미소로 그윽히 바라보시던 그 자비성안을 이제 어디에서 다시 뵈올 수 있을런지요. 저희 후진들은 스승님의 종재일을 맞이하여 스승님께서 남겨주신 유훈들을 가슴에 새기며 전무출신으로서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시한번 굳게 다짐하오니, 이생에서 못다 이루신 유업일랑 저희들에게 모두 맡겨놓으시고 피안에서 잠시 편히 쉬셨다가 다시 이 회상에 오실 때에는 성불제중의 대업을 성취하는 큰 성자로 오시옵소서.
원기 98년 8월 8일
출가교도 대표 이선조 | 13-08-10 11:45 | 댓글달기
잠실교당에서 법문 받던일이 엊그제같은데 세월이 언제 가버렸는지
정말 인생무상임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이산님의 명복을 빕니다. 박덕수 | 13-08-14 21:26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