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민 2013-09-17 08:59:09
조회수 : 1,947
준산님, 이제는 편안하신가요, 늘 속박 없는 해탈자유를 찾아서 정진 적공하시던 준산님, 드디어 거추장스럽던 육신을 던져 버리시고 대 휴식의 길로 훌훌 털고 나서신 준산님, 이제 원하시는 바 이루시었으니 축하합니다. 그곳은 육신으로 느끼는 더위도 없고 추위도 없으시나요? 그동안 몸을 가누지 못하였던 고통도 이제는 없으시나요? 폐를 뚫고 몸속에 들어와 있던 가래 고무줄이, 하고 싶은 말과 쉬고 싶었던 숨을 막아 답답하시던 그 고통이 이제는 사라져 편안하시나요?
부디 영단의 자유를 즐기시며, 고뇌가 적멸하고 번뇌가 영멸한 그곳에서 대휴식 대휴식하시고 다시 기연되시면 훗날 인간계의 아름다운 인연을 새로 시작하시지요.
준산님께서 그렇게 훌훌 가시니 저희들은 이제 준산님을 생전 육신의 모습으로는 뵈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준산님의 육신의 재를 담아둔 무덤가에 가서 어리석고 슬픈 울음을 울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준산님은 이미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준산님께서는 이제 천지 기운에 당신을 합하시고 천지 만물로 그 형상을 바꾸시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쪽 하늘 붉게 물든 노을을 볼 때 준산님께서 그곳에 계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봄날 부드러운 아지랑이와 실 바람 속에 준산님이 계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흰 구름속에, 들길의 홀로 핀 꽃잎속에, 여름 날 세찬 빗 줄기 속에, 들판을 뒤 덮은 하얀 눈 속에 준산님은 계실 것입니다.
이제 준산님의 형상은 사라져 천지 만물로 변하여 있고 준산님의 음성은 뒤에 남은 저희들의 가슴속에 있으니 이제 저희들은 노을과 바람과 구름을 보면서 그 음성의 메아리를 느낄 것입니다.
준산님, 무집착의 수행길을 닦으신 준산님, 아상과 수자상을 놓는 공부에 유별나게 적공하셨던 준산님,
상이 없으니 천진난만하셨던 준산님 곁에는 젊은이들이 늘 가까이 있었습니다. 나이 차이를 괴의치 않고 항상 대화의 상대로 맞이하시어 허물없이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준산님은 단 4마디의 말로 젊은이들을 친구로 만들어 갔습니다.
편한대로 해, 힘 들면 놓아버려, 술이나 한잔해, 너하고 안 놀아,
분당교당에서 준산님께서 즐겨 말씀하시던 이 네마디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5년전에 분당교당 초대회장이시던 준산님은 분당교당 새 전입교도 조제민을 술상 앞에 앉혀 두고 20년의 나이 차이를 잊은채 교당의 도반으로 대화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15년 동안 술상을 앞에 하는 스승과 제자이며 담론 상대의 도반이 되어 갔습니다. 15년이란 그 세월은 준산님을 뵈오러 텃밭에 갈 때 손을 잡고 데리고 다녔던, 텃밭을 뛰어 다니던 초등학생 딸 아이가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는 긴 세월이었고 준산님은 그땐 제 나이 비슷했고 지금은 제가 그때 준산님 처럼 변해 온 그런 긴 세월의 흐름이었습니다. 그 긴 세월의 법 동지요 스승과 제자로서 우리는 무문관과 여러 불경과 정전과 대종경에 대해 토론을 해 나갔고 공사상이나 무자리 소식과 인과에 대해 상호 많은 연구 발표를 하였습니다. 준산님께서 열어 주시는 그 공부 모임의 시작은 항상, 공부같은 소리 하고있네 술이나 한잔해 안하면 너하고 안놀아 였습니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는 것이 목적이 아님은 늘 그러한 자리에서 만덕산 승산님의 강의에 대해 말씀하셨고 당신이 공부한 유식론에 대해 말씀하셨고 늘 새로운 책을 읽으시고는 저에게 읽어 보라고 권해주셨고 다음에 만날때는 읽은 책에 대해 감상담을 서로 나누어야 하는 공부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모임의 시간에 준산님은 교당교화 특히 젊은이 교화에 대해 걱정하시었고 젊은이들이 봉사할 때 무엇 하나라도 거들지 못할까 걱정하시던 우리 교당의 원로 우리 교당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준산님께서는 자식 뻘 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연장자로서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실 만큼 철저하게 수자상을 떼셨고 깊은 공의 세게에서 중심을 세우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무분별에 빠지지 않으셨고 도인답게 분별의 세계에 엄격할 줄을 알으셨습니다. 시간엄수를 중히 알고 시작 시간을 어기는 것을 무엇보다고 싫어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하시었고 체면에 끌리어 말과 행동을 그럴 듯하게 꾸미는 것을 싫어 하셨습니다. 공의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교당행정이 처리되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15년간 대화의 벗이자 아들 같았던 조제민이가 교도회장이 되었을 때 교당 고문으로서 공식적인 교당일을 회장에게 질의할 때에는 반드시 회장님 하면서 경어를 사용하시는 철저한 분별의 세계도 중히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준산님에 대한 회고는 길지마는 이제 준산님께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준산님께서 안성에 심으신 나무들이 푸른 싹을 내고 뿌리가 깊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새로운 생명으로 새 기쁨이 시작될 것입니다.
준산님, 저희들에게 도인을 만났던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떠나시는 순간에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올릴 수 있는 항마도인을 저같은 사람이 가까이 모실 수 있어서 큰 복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희들도 공부해서 항마하고 축하받으며 이 삶을 마칠 수 잇도록 뒤따르는 공부를 잘 하겠습니다.
준산님! 준산 스승님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원불교에서 그리고 분당교당에서 만난 그 인연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후기: 98.9.9 열반소식 접하고 교도회장 고사 읽으라기에
밤새 고사 쓰면서 울고 발인식때 쓴 고사 읽으면서 울었는데 초재 때 한번 더 읽으래서 또 울었습니다. 게시판에 올리래서 또 웁니다. 준산님 떠나시기 한달전에 뵈옸는데 그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마치 나 훈련 다녀올께하시는 듯 그렇게 웃고 우리를 배웅하셨습니다. 님은 가셨지만 정법은 대를 이어 영원할 것입니다.나무아미일원정법!)
분당교당 교도님치고 준산 형님과의 추억이 한두 가지 없는 분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준산님으로 인해 교당을 나오게 된 소중한 인연이 있어 더더욱 가슴 메어졌습니다. "대연이 너, 나를 형님이라 안부르면 너하고 안놀아!" 이것이 제가 그후 수도 없이 들었던 '너하고 안놀아'를 처음 들었던 처음 만남이었습니다.
그 뒤로 교당 나올 때마다 항상 앉아계신 고정석으로 찾아가 인사부터 드리고 저는 제 자리를 찾아가 앉곤 했지요. 이제 그 자리에서 준산님을 영원히 뵈올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 너무나 허퉁해집니다.
그동안 저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적잖은 어르신들을 보내드리면서 저도 어언 나이 70줄을 훌쩍 넘기게 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인생무상이 교당 원로님들이 이렇게 한 분, 두 분 떠나보내게 되니 정말 뼈저리게 느껴지는군요.
남은 여생이라도 열심히 공부하여 저도 준산 형님처럼 서방정토에 태어날 수 있어서 회장님이 바라보시는 석양의 저녁 노을이 되고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인연이 되어 회장님께서 제 영전에 석양의 저녁 노을을 보면 대연님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마고 고사를 읽어주시면 저는 제 몸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꼭 답을 드리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대연 | 13-09-17 11:43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