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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亢山) 김인철종사님을 그리며

수산 | 2013-10-28 22:37:13

조회수 : 2,736

         항산(亢山) 김인철종사님을 기리며                          
             -통큰 심법 통큰 비전
                                                                                                            분당교당 수산 조정제

   2011년 5월 4일과 5일, 원불교의 큰 스승님, 상산(常山) 박장식종사님과 항산 김인철종사님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루사이에 같은 새벽에 잇따라 열반에 드셨다. 상산님은 향년 101세로 장수하셨는데, 항산님은 78세로 일찍 떠나셨다.

   영결식은 7일 반백년기념관에서 상산님은 10시에, 그리고 항산님은 2시에 열렸다. 나는 항산님의 영전에 재가교도 대표로 고사를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영전에 꿇어앉아 영정을 올려다보았다. 티끌 한 점 없이 해맑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탈속한 청정법신불이 거기 앉아계셨다.

   “항산님, 상산 선진님이 떠나심에 길동무가 되어드리고 싶어 따라 나섰습니까. 생전에 내세에서 형제로 다시 만나 중생제도 하기로 약속한 대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항산님은 빙그레 웃음을 띠는 듯하였다. “우리, 훗날 미국에서 태어나 세계 대불사에 함께 나서 보세나.” 부촉말씀으로 다독이는 듯 느껴졌다.

   항산님은 1934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시어 1960년 출가 후에, 교정원 총무부장, 수위단 사무처장, 교정원 기획실장, 교정원장, 원광학원 이사장, 중도훈련원장 등 교단의 중요요직을 두루 거치시고, 거연히 열반에 드셨다. 한평생 정남으로서 오롯이 교단에 한 삶을 바치고 뜨셨다.

   우리 제자와 후진들은 추모행열로 서서 영모전과 소태산대종사 기념관 앞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서 정문을 향해 걸었다. 하루 종일 법복 차림이었다. 헐렁한 법복, 소매가 길고 거추장스러웠다. 소매 밖으로 손을 내밀고 걸어도 불편했다. 두 분의 종사님도 거기 함께 법복 차림으로 거닐고 계시거니 싶어 원로법사님들을 힐긋 쳐다보았다. 손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법복 속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워보였다. 나도 어느새 손을 잊고 따라 걸었다. 그냥 걷고 걸었다. 내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 사 나도 법복 속이 편안해졌다.

   총부정문으로 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항상종사님을 영모공원으로 모셔갔다. 영주, 일원상서원문 독경 속에 육신이 대지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상산님과 항산님의 영혼은 손잡고 나란히 불타는 영산홍 꽃길을 다정히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지난 달 영산성지에서 훈련을 받느라 하루 밤을 묵었었다. 항산님의 기획실장 재직 시인지, 아니면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직된 성업봉찬회 사무총장시절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1980년 초에 영산성지에서 개최한 <영산성지 개발구상>을 위한 모임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국토개발연구원 국토계획부장으로 근무할 때라 국토 및 지역계획의 전문가로서 초대를 받은 자리였다. 그 때에 참석하였던 다른 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모두들 영산성지가 앞으로 원불교성지로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방하는 세계적인 성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내 눈에는 한국의 많은 산야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우리 교도들에게는 성지로 인식되겠지만 우리 원불교도가 아닌, 그것도 세계각지에서 찾아드는 세계적인 성지로 돋보이리라는 상상은 너무 심한 자화자찬으로 보였다.그 때 나의 폄하에 난감해하시던 항산님의 모습이 지금도 서언하다. 참 미안하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에 분당교도들과 함께 버스 두 대로 분승고 다시 영산성지에 들렀다. 영산성지에 가는 길에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도 들렸다가 영상성지로 찾아들었다.

   그사이 건강이 걱정스러워서 삼밭재는 올라가지 못하고 중앙봉에 올라가보았다. 정산종사님이 기도하신 자리에 앉아 사방과 구인기도봉을 둘러보니 여기가 정말로 불연이 깊은, 세계적인 성지가 되겠구나 싶었다. 소태산의 9인제자들이 1919년 3월부터 10월까지 각각 기도를 드렸던 산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一山님의 설래바위봉, 밤나뭇골봉(二山),촛대봉(三山), 눈썹바위봉(四山), 마촌앞산봉(五山), 옥녀봉(六山), 공동묘지봉(七山), 대파리봉(八山)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니 그 때의 기도기운이 지금껏 어려 있는 듯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최고로 뽑히는 영광의 서정이 넘치고 아름다운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들어오면 백제불교 도래지의 거대한 불상이 안내해주는 그곳에 새 부처님이 대각을 이루신 원불교 영산성지가 포근히 자리 잡고 있다. 이제야 내 눈이 트이니 항산선진님께 그 때 단견으로 심기를 어지럽혀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지금 해서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었다.

   영산성지는 성업 100주년을 맞아 소태산 대종사님이 대각하신 그 자리에 큰 일원상을 세우는 구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萬古日月(만고일월)이라는 비석은 규모도 왜소하고 원불교의 상징화에도 미흡하다. 그러나 성지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 교도의 눈이 아니라 세계인의 눈에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일원상 조각에 그치지 않고 대각 시에 비가 새는 초가집 이미지가 어딘가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항산님의 지혜와 통 큰 비전이 살아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1981년, 항산종사님은 원불교 종교연합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서울대회를 유치하는 등 국제적으로 종교간 협력과 화합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에 따라 1986년 6월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제 3차 총회(서울대회)가 앰배서더호텔에서 “아시아의 평화의 가교”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때 한국위원회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6대종교의 대표로 구성되었고, 2000년대에 원불교가 한국 4대종교로 부상하는 길목을 터주었다. 그 총회에 본인도 말석에 참여하여 원불교의 밝은 전망과 위상에 부듯함을 느꼈었다.

   항산님의 교정원장 재직 시에 저는 원불교청운회장과 보은동산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원불교청운회가 중심이 되어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을 설립하고 첫 관장으로 부임한 중타원김혜심교무님이 임기가 끝나자 후임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는 과감하게 교정원장님께 보산고문국(속명 고윤석)회장님을 추천하였었다. 그 때 고윤석교수님은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마치고 쉬고 있을 때였다. 항산교정원장님은 고회장님이 그 일을 맡아주실까요 의문을 표했다. 나는 고회장님을 설득하여 응낙을 받아냄으로써 유능한 재가교도의 관장을 모시게 되었었다. 이 과정에서 항산종사님의 재가출가를 가리지 않는 그 통 큰 심법에 감명을 받았다. 고회장님은 그분의 사회적인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관장 자리에 사심 없이 마음을 내어 주신 것에 이 자리를 빌려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항산 김인철종사님이 열반에 드신 지도 어느 듯 3년째에 접어들었다.  항상 웃음 띠고 바람처럼 달빛처럼 걸림 없이 중도 행을 나투시고, 끝내 형 먼저 아우 먼저 하시다가 큰형님 열반 소식 듣고 급히 따라 나선 항산님, 그 단아한 얼굴, 사뿐사뿐 걸으시는 그 자태와 걸음걸이 다시 보고 싶다. 항상 상하좌우에 귀 기울이고 출재가를 두루 아우르고 일단 결정된 공중 사는 부드러움 속에 정성을 다하며 대찬 추진력을 보여주신 그 심법과 기개에 박수를 보낸다.

  • 이글은 항산 김인철종사님 문집(?) 원고 청탁이 있어서 정리한 것입니다. 좋은 코멘트 바랍니다. 수산 | 13-10-28 22:39 | 댓글달기
  • 저의 어린 시절 뵈었던 김 인철 종사님의 웃음띤 단아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요즘 총부의 많은 어른들이 돌아가심에 마음이 무거운데 ...

    깊이 생각해 보면 가신듯 다시 오실 어른님들이  현재 침체된 원불교의 교화에 새로운 장을 위해 바쁘신 걸음하신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가신님들을 다시 한번 기려볼 기회를 주신 수산님!!
    감사합니다.
    임성명 | 13-10-30 16:22 | 댓글달기
  • 6문단에 -- 우리 조문객은  을 우리제자들은 추모행열로 서서 로가    좋을 듯 합니다.
     
    9문단 첫줄에 분당교도 버스2대 로 바꾸면
    이선조 | 13-10-30 16:46 | 댓글달기
  • 추모글 이지만 제목이 달리붙여 봤으면 합니다. 예- "통큰 심법 통큰 비젼 "


    허나 주최측에서 제목을 주셨다면  그렇게 하셔야지요.
    이선조 | 13-10-30 16:58 | 댓글달기
  • 감사합니다. 교감님의 코멘트 바로 반영하였습니다. 수산 | 13-11-02 11:22 | 댓글달기
  • 아주 빼어난 추모글 입니다.
    항산님께서 영계에서도 감동하여 넘어지실것 같습니다.
    이선조 | 13-11-05 18:32 | 댓글달기
  • 한참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대종사님 동상을 제작하기 위해 서울에 오셨던 종사님을 모시고 자타원과 함께
    우이동 조각가의 작업실에 갔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 누구보다도 먼저 대종시남의 두렷하신 존영(조각상)을 현장에서 직접 기까이 뵈올 수 있었던 것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우리를 그 자리에 함께 데리고 가 주신 것만도 늘 종사님께 감사하며 지냈었는데 ...... 
    수산님의 자상하신 회고의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다감하시고 진중하셨던 종사님의 음성과 조용한 미소가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수산님,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김성규 | 13-11-08 08:55 | 댓글달기
  • 숙산님도 글 한편 쓰세요. 내가 항산님의 동생분 가산에게 소개할께요. 그분은 원광대 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나와 더불어 수위단에 함께  봉사하였습니다. 여기 제시한 만남과 그외의 인연을 담아서 한편 쓰보십시오. 기대합니다. 수산 | 13-11-08 18:33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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