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조 2013-10-31 21: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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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조 (이순주)교무
태타원 스승님의 마지막 임종은 주목받는 선수가 엄청난 높이로 점프를 하여, 공중에서 삥그르르 멋진 회전을 하고 가뿐하게 착지하듯이 그렇게 하시려 함이신가?
태타원 송순봉님은 원불교 성주성지에서 영산성지로 날라 오신 성자 혼을 타고 오시여 우담바라 꽃으로 아름다운 자태로 살 으셨다.
보고 듣고 하는 일이 영산원에서 행하는 강연. 공부인지라 다섯 살 어린음성에서는 창틀을 무대삼아 “여러분 계문을 잘 지킵시다.” 야무진 어린동자 음성으로 영산원 기운을 맑게 조성 하였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의 딸로 살아오신 태타원님은 어린아이 앞에서도 함부로 양발을 벗고 계신지 않으실 정도로 단아하셨다.
나는 원불교대학원 시절에서 대학원대학교 2년 과정을 준비하는 3년동안 학생처와 교무처를 오가며 태타원님과 교단사와 인재양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법문으로 받들기도 하였다. 틈나면 난 화분을 살피시고 세필을 들어 붓글씨를 쓰셨다.
새벽좌선 시간 저녁염불 시간 학생들을 바라보고 가운데에 총장님 양옆에 사감 진 뒤쪽에 부사감진 이 긴네모 대열로 앉아서 선을 했다. 태타원님은 108배 수행은 우리전통이 아니니 4배를 정중히 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고 지도하셨다. 선이 마치면 일제히 일어나서 총장님과 인사하고 교무진 교수진과 인사하고 동지 상호간에 인사하는 일이 108배 수행보다 더 큰 절수행이라 하셨다.
기도문 독배 시 기도문을 올리려고 반가부좌 상태에서 자세를 고쳐서 무릎을 꿇게 되면 그도 일심을 흐리게 되어 참기도수행이 아니라며 반좌한 상태로 기도문을 올리시도록 하셨다. 이는 대종사님 당대 에도 무릎 꿇고 기도문을 올리지 않았다 하셨다.
특별한 수행보다 평범하게 계속하는 수행이 참 수행자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었다.
학생들과 좌선과 공동 요가를 마치면 태타원님을 모시고 구내를 한 바퀴 돌았다.
그때 가끔 하시는 말씀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영산에 오셔서 산에 가시여 땔나무를 해서 머리에 이고 오시며 사셨는데도 ” 우리는 대종사님 덕분에 우리 손으로 나무도 해서 땐다고 기뻐하셨다. ‘는 그 상황을 자주회고 하셨다. 귀한 양반집규수들이 아래 사람들이 하던 힘든 일을 하시면서 여성평등의 자립생활을 즐기셨다는 말씀인가? 생각을 했었다.
이따금 2대종법사 자리에서 애쓰셨을 아버지 정산종사님이 그리우신지 어디든지 2대가 힘들고 2대가 중요한데 정산종사님은 그 중요한 일을 힘든 상황에서도 대종사님 과 한마음으로 해내셨다. 는 말씀을 하셨다.
태타원님께서 대학원에 근무하시기 시작 할 때는 정산종사 탄신 백년이 5년이 남았었다.
태타원님은 대학원생들과 해마다 성주성지 전지훈련을 하고 정산종사께서 구도하려 다니셨던 구도 길을 개척하도록 주선하셨다. 성주성지를 수호하시던 김경인 교무님이 날마다 순교 다니신다. 하며 탄 생가 와 구도지에 풀을 뽑으며 법열에 가득 차 동네사람들 인심을 훈훈하게 잡아주시고 성명종.김기홍.차윤재.양세정.이진훈 교무들을 비롯하여 대학원교무들과 학생들이 정산 주산의 세계에 들어 동네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선물하고 따뜻한 관심을 가져서 정산종산 탄생100년 행사 준비를 하는 밑 작업을 했었다. 나와 우리학생들은 정산종사님처럼 깊은 구도에 들고 정산. 주산종사처럼 스승님경륜을 실천 할 수 있는 후진이 될 것을 발원하며 행복해 했다. 태타원님은 우리 학생들에게 고마워하시며 글을 써 주셨다.
“ 우리는 하나이니 한마음으로 살자” 이 내용이다. 이 내용으로 총부 설법도 하시고 대중이 이 내용을 따라 복창 하도록 부탁하시고 복창에 임하여주어 참으로 감사하다. 하셨다.
순백으로 살아오신 성자의 딸 태타원님은 대학원원장님 과 정화단 단장을 겸직하시었다.
“샘솟는 기쁨” 이 정화단 삶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시며 어느 후배가 남여 욕을 넘어서지 못하여 애쓰는 일을 보시고 자기 자신의 금욕수행을 위하여 자신 49재를 지내도록 권해주셨다. 나도 그 후배들을 위해 정녀들의 순결한 생활을 염원하며 49재를 지냈다.
사가가 없으신 태타원님께는 사가에 다녀온다는 말씀 드리기가 죄송했다. 명절인사차 사가에 가서 아침만 먹고 점심 드실 것을 싸가지고 대학원에 와서 차려드리면 바로 우리부모님께도 고마운 전화를 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가 시봉 물을 드리면 곧바로 고마움을 표현 하셨다. 미국에 다녀오실 때 나 러시아에 다녀오실 때 나 사람 사람에 맞는 선물을 사 오시는 그 세심함에 다정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스승님은 아직 성리에 눈이 침침한 나에게 대산 스승님께 문답감정을 받으셨던 유와무의 세계에 대한 말씀을 가끔을 반복해주셨다.
無通有顯其自存(무는 유를 통해서 그 자존을 나토고)
有本無變基形像(유는 무를 근본해서 그 모습을 변화한다.)
有無超越卽無門(유무 초월한 즉 무문이요)
無有循環卽永生(무와 유가 순환한즉 영원한 생성 이라.)
태타원님은 대학원대학교총장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싶어 하셨다. 부총장으로 김형철교무님을 총괄처장으로 성도종교무님오셨는데도 총장님으로 계실듯 보였다.
허나 수위단 상임 중앙 단원으로 이동 될 때에 는 조용히 명령에 따르시며 정읍교당에서도 예산 교정원장님께서 감찰원처장으로 부르시기에 6개월 만에 이동했다고 회고하셨다.
정년 퇴임 후 노환이 되시여 별도병원에 계시기에 찾아뵈었다.
간절히 청하셨다 “선조 너는 할 수 있지 않느냐 나 좀 불러서 이곳에서 나오게 해다오.”
얼마나 눈물이 나왔는지, 공가란 참 차가울 만큼 선명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태타원님만 모시고 어디 조용한 곳에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도원에 계시며 사진첩이라도 보시며 “내가 예뻐하는 사람 왔구나! 할 때가 그리워 병원에 가서 뵈면 그야말로 일체를 도방하 하고 분별을 잊으신 진경 상태에 계셨었다.
태타원님의 발인식날 서울 교의회의장이며 사촌동생이신 송경은 님은 경남여고 영매로서 전무출신 하신다고 총부에 오셨던 19세 세일러 복 차림의 눈부시게 예뻤던 여고생의 모습 그 때도 아름다웠지만 다 놓고 아주 작은 모습으로 떠나신 누님의 마지막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고 고사하심에 나도 진하게 동감할 수 있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빙판 위에서 공중회전 후 착지할 때 그 자세 가 완벽하기를 얼마나 연습을 하는지 유명한 뜀틀 선수가 가볍게 달려와서 공중에서 360도 회전을 흐트러짐 없이 착지하듯이 태타원님은 또 한생을 회전하여 복족족 혜족족 한 삶에서 360도 회전 하며 성자의 딸. 아름다운 여인. 수도인. 정녀. 이 모든 것 다 에 내려놓은 아름다운 착지를 하고 떠나신 성자이셨다. 는 생각이 든다.
태타원님은 인연이 별로 닿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종재식에 가고 싶습니다. 수산 | 13-11-02 11:57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