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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여행기

김인택 | 2013-11-08 14:53:34

조회수 : 2,630

















진시황과 양귀비의 발자취를 따라

김태문

지난 10월 초순 경기51회 동창부부 24명(동창 16명, 부인 8명)이 3박4일의 중국 서안 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일정은 9월 초순이던 것을 더위를 피하여 한 달 늦춘 것인데 이번에도 낮 기온이 25-6도로 약간 더웠으니 9월에 갔더라면 큰 고생을 할 번했다.

서안(西安, 시안-Xian)은 섬서성(陝西省)의 성도(省都)로 인구는 약8백만이고, 대표적인 중국 고도(古都)의 하나로 대략 BC 1300년부터 AD 900년까지 사이의 장기간 서주(西周), 진(秦), 전한(前漢, 또는 西漢), 수(脩), 당(唐) 등 역대 왕조의 수도였다. 특히 당(唐)나라 는 이웃 나라 정복과 먼 나라와의 교류 등 국력이 크게 신장되어 수도 장안(長安)은 현종(玄宗) 때 인구 150만의 세계 최대 국제도시로 번창하였다. 넓고 비옥한 관중평야(關中平野) 가운데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위하((渭河, 황하의 지류)가 지나가고, 동경 109도, 북위 34도에 위치한다. 조금 남쪽으로 험준한 진령산맥(秦嶺山脈)이 동서로 달리는데, 옛날 삼국시대에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한중(漢中)으로부터 이 산맥을 넘어와 위(魏)의 사마의(司馬懿)와 자웅을 겨루다 숨을 거둔 오장원(五丈原)이 150km쯤 서쪽에 있다.

서안은 2200여년 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에 진시황(秦始皇)이 이웃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여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만들고 천하를 호령하여 오늘날까지 친(秦, Qin) 즉 China라 불리게 만든 기초를 쌓은 곳이다. 그는 통일 후 전국에서 수십만의 인력을 동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 아방궁(阿房宮), 자신의 황릉(皇陵) 같은 대규모 토목, 건축공사를 벌였는데, 근년 황릉의 일부와 거기 딸린 병마용갱(兵馬俑坑)이 발굴되어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솜씨에 세인을 탄복시키고 있다.

또 1200여년 전 당(唐)의 현종과 양귀비(楊貴妃)가 함께 노닐던 흥경궁(興慶宮)과 사랑을 나누던 화청지(和淸池) 등 볼거리가 남아있다.

이번 여행에는 인천공항에서 서안공항까지 가이드가 동행하지 않아 우리는 서안공항의 입 출국 수속시 단체비자에 적힌 명단 순서대로 줄을 서서 들어가고 나왔다. 서안공항도 중국의 다른 대도시 공항처럼 상당히 크고 넓은 듯했는데 아직은 그다지 붐비지 않는 것 같다. 공항에는 조선족 현지 가이드가 서안여상여기공사(西安旅商旅技公司)란 상호가 적힌 35인승 정도의 버스를 가지고 대기 중이었다.

여행 중 날씨는 좋은 편이었으나 문제는 원체 좋지 않은 서안의 공기였다. 날씨가 개었는데도 대기가 뿌옇게 흐렸는데 그곳은 연중 옅은 황사 때문에 푸른 하늘이 보이는 날이 20여일 밖에 안 된다고 하니 호흡기가 나쁜 사람은 살 곳이 못되는 것 같다.

특히 성(省)의 이름을 중국어로 부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섬서성(陝西省)와 그 동쪽의 산서성(山西省)은 모두 샨시(Shanxi)인데 섬(陝)자는 3성(聲), 산(山)자는 1성(聲)이므로 중국지도에는 섬서(陝西)를 Shaanxi로 길게, (山西)를 Shanxi로 짧게 표기해 놓았다.

 

10월 5일(토)

인천공항에는 출발 2시간 전인 8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정각에 나타난 1쌍을 빼고는 모두가 30분쯤 미리 나올 정도로 ‘시간엄수’하는 모범생들이었다.

서울 인천공항을 10:15에 출발하여 3시간 10분만인 12:25에 서안·함양(西安咸陽)공항에 도착하였다.(표준시가 한국보다 1시간 늦음). 아마도 우리가 서울·인천공항으로 부르듯 실제 공항 위치가 함양(咸陽, 서안의 서쪽)인 모양이다.

바로 공항 앞의 큰 호텔 서안대주점(西安大酒店)에 들어가 한 테이블에 8명씩 둘러앉아서 큰 그릇에 차례로 나오는 밥, 국, 각종 반찬을 덜어 먹었다. 이른 아침에 빈속으로 집을 나서 간단한 기내식을 먹은 터라 시장했던지 맛있었다.

서안 시내 silk road 시작점에서 기념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어 섬서(陝西)역사박물관에 들어갔다. 서안에 도읍했던 역대 왕조는 물론 까마득한 선사시대인 앙소(仰韶)와 용산(龍山)문화의 유물 등 볼거리가 많았지만 시간이 짧고 관람객이 붐벼서 아쉽게 대충 보고나왔다. 중국국경절(國慶節, 10월 1일) 연휴에 이은 주말인 탓이다.

또 대안탑(大雁塔) 앞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숙소인 호텔 서하풍윤주점(西荷灃潤酒店)에서 내려 건너편 식당에서 샤브샤브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너무 양이 적어 추가주문으로 겨우 배를 채웠다.

8시경 호텔에 check-in하니 TV는 중국어만 나와서 우리 내외는 호텔 밖으로 나가 네온등이 번쩍거리는 부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맞은편에 우뚝 선 상가건물을 향하여 육교로 대로를 건너니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간판이 보인다. 에스컬레이터로 지하층으로 내려가 슈퍼마켓에서 맥주 2캔을 샀다. 배워둔 중국어가 서툴러도 쓸모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줄곧 같은 호텔에 머물러 짐을 풀었다 싸는 번잡함이 없어 좋다. 객실도 깨끗하고 조식 뷔페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커피가 맛이 없는 것이 흠이었다.

 

10월 6일(일)

9시반 숙소를 나서서 바로 팔로군서안판사소(八路軍西安辦事所) 기념관을 관람했다.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처럼 중국공산당과 군대(팔로군)가 중일전쟁 중 일본군과 싸울 때의 지휘본부를 재현해 놓았다. 모택동(毛澤東), 주은래(周恩來), 주덕(朱德), 섭검영(葉劍英), 팽덕회(彭德懷), 등소평(鄧小平) 같은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어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욕을 즐겼다는 화청지(華淸池)를 관람하였다.

가까운 진금당(秦錦堂)에서 원탁에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는데, 이제부터 점심과 저녁에 부인들 8명 따로, 남자들은 8명씩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차례로 나오는 음식을 먹었다. 곧 들어간 실크상점에서 실크제품은 안 사고 간단한 죽섬유(竹纖維)제품만 몇 점씩 샀다.

이번에 진시황릉(秦始皇陵)으로 가 구내를 왕복하는 셔틀버스로 바꿔 탔다. 진시황릉은 한대(漢代)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엄청난 인력동원과 지하시설의 실태가 적혀있는데 근래 탐사로 대규모 지하궁전의 실재가 확인되었으나 현재의 유물보존기슬로는 장기보존에 문제가 있어 발굴을 미뤄놓은 상태라 한다. 능위의 산언덕만을 보았다.

황릉의 부대시설인 병마용갱(兵馬埇坑, 1,2,3관)은 대부분 발굴되어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솜씨가 우리를 압도하였다. 축구장보다 넓은 1호갱에는 다양한 자세로 정교하게 빚은 실물크기의 병사 8천명이 도열해 있어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중국이란 국가와 병마용갱 같은 유적이 바로 진시황의 중국통일과 대규모 토목, 건축공사의 결과물이고 보면 위대한 제왕이란 원래 숱한 사람의 피와 땀 위에 군림하는 사람인가? 피라미드를 만든 이집트의 파라오, 베르사유궁을 만든 프랑스의 루이 16세 등등. 우리가 입구에서 황릉과 병마용갱 앞까지 걷는 동안 가마꾼이 노인들을 겨냥하여 자꾸 휠체어를 타라고 권했지만 아무도 타지 않았다.

서안일대는 석류, 감, 대추 같은 과일이 흔한 곳이다. 사방의 널찍한 석류밭에는 큼직한 석류가 잔뜩 열렸는데, 열매마다 비닐봉지를 씌운 것은 거기에 물을 채워 석류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저녁에는 한식당으로 가서 삼겹살로 식사를 했다.

다시 화청지로 가서 널찍한 야외무대에서 5천명의 관객과 함께 대규모 역사 뮤지컬인 장한가(長恨歌)를 약70분간(8:10~9:20) 관람하였다. 현종과 양귀비의 영화(榮華)와 몰락을 그린 내용으로 그 웅장한 규모와 화려한 무대가 몇년전 항주(杭州)에서 관람한 송성가무쇼(宋城歌舞show)에 비견할 정도였다.

10월 7일(월)

오늘은 일정이 한가로운 날이다.

9:30 호텔을 나서서 서안에서 가장 오래 된 흥선사(興善寺)를 관람하였다. 어느 전각에는

어려서 들었던 지옥(地獄)의 끔찍한 장면을 그럴 듯하게 꾸며놓았다. 뒤에 이웃한 Latex상점에 들러서 베개를 몇 개 샀다.

이어 종고루(鐘鼓樓) 부근으로 가서 대로변에 버스를 세우고 회족(回族)거리를 지나 만두로 유명한 덕발장(德發長)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례로 10여종의 만두를 맛보았지만 이름과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번잡한 회족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독특한 그들의 전통시장에서 온갖 음식, 옷, 수공예품 등을 재미있게 구경하였다. 사람이 붐비고 시끄러워 옛날 남대문시장 같았는데 즉석에서 만드는 엿과 강정을 맛보고 작은 수공예품도 샀다.

또 현종과 양귀비의 발자취가 남은 흥경궁(興慶宮)공원을 거닐었다. 3시쯤 일정이 끝나 일행 중 반은 호텔로 돌아가고 반은 발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댓 명씩 침대에 누워 느긋이 맛사지를 받고 나니 피로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석식은 우리 호텔에서 했는데 식당측이 제공한 맥주 몇 병이 그나마 조금 남았다.

저녁에 부인들과 남자 몇 명이 그저께 우리 부부가 답사한 상가로 건너가서, 일부는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일부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몇 잔 외에 팥빙수를 주문하려 고 <빙수(氷水)>라고 적은 쪽지를 내밀었더니 커다란 잔에 얼음을 띄운 냉수가 나왔다. 외국 여행 시에는 짧은 외국어도 유용할 때가 있다.

 

10월 8일(화)

이른 아침에 우리 부부는 가까운 거리로 나가서 우리가 김밥을 사먹듯이 서민들이 길가의 작은 국수집, 만두집 같은 데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광경을 구경하였다.

이제 사흘을 묵었던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10시에 공항으로 향발하여 11시경 조선족이 경영하는 농산물 가게를 잠시 들렀다.

13:10 서안공항을 출발, 2시간반 만인 16:40 서울인천공항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 리무진버스로 17:30에 공항을 출발, 18:40 분당에 귀환하였다.

사진설명:
위로부터 실크로드출발점, 대안탑, 화청지, 진시황릉, 병마용갱, 병마용(마차),
회족거리, 병마용(병사는 실제 사람보다 조금 크고 정교함) 

  • 저는신림교당근무시절
    전임 교무님과 교당요인들과 24명이
    다녀온 코스 일부인지라
    다시 간듯 눈에 삼삼 귀에 쟁쟁 입에 뱅뱅 입니다.
    왜 우리선조들이 중국을 대국이라 받들며 쩔쩔 매신적이 있으셨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요.
    이선조 | 13-11-09 07:45 | 댓글달기
  • 감사합니다. 유신화 | 13-11-09 09:29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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