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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갯벌, 그리고 어머니

수산 | 2014-01-04 21:37:00

조회수 : 2,433

                   꼬막, 갯벌, 그리고 어머니

여자만 보성에서는 벌교꼬막 축제가 한창이다. 벌교 꼬막은 추운 날에 잡아야 제 맛이다. 나도 꼬막요리를 좋아한다.

대여섯 살 되던 해였다. 엄마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갯벌로 좇아갔다. 엄마는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빨리도 걸었다. 엄마 엉덩이는 눈앞에서 흔들렸다. 우리는 드디어 고성 당황포 갯가에 닿았다. 거기 갯가에서 파래를 뜯고 좀 더 깊이 갯벌로 들어가 호미로 꼬막을 팠다.

어머니는 당황포의 갯가를 “속시개”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해군이 왜군을 유인해서 격퇴한 곳이라 하여 속시개라고 불렀나 보다. 당황포 해전은 이순신제독이 선조 재위 시에 두 차례 걸쳐 왜선 57척이나 섬멸한 전승지다. 나와 바다의 첫 만남이 이러한 역사적인 전승지에서 이뤄졌다니 놀랍다.

이 꼬마는 어머니 같은 바다와 성웅 이순신의 기를 받았음인지 훗날, 정확히는 반백년 후에, 해양입국을 지향하는 부처의 수장이 되었다. 그뿐인가, 그는 노리에 수필집 “바다와 어머니”를 출간하고 해양자원의 보존에 앞장서며 갯벌 지킴이로 남은 삼부작 인생을 보내고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마트에 가면 카트를 밀고 아내 꽁무니를 따라 다니다가 파래와 꼬막을 보면 한 묶음 얼른 집어넣는다. 하지만, 아내의 파래 무침과 꼬막요리는 옛날 어머니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40년 전 50대 초반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등졌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기말 시험이 있는 기간인데다 그 당시엔 학생 처지에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서 임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큰 아들이 훗날 학위를 따고 귀국할 때에 볼 수 있도록 선산의 높은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 살아계시면 95세이니 늦게나마 모셔도 효도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제 고작 꼬막 맛을 볼 때나 떠올리니 참 불효자라는 자책을 하게 된다.

보성 벌교꼬막 축제는 금년으로 제12회 째로서 10월 25일~27일 3일간 개최되었다. 벌교 꼬막은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꼬막 맛 따라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벌교에서”라는 주제로 열린다. 인근에 조정래 작가의 문학관이 있다.

어머니들이 줄지어 널빤지 배를 밀고 그 속에 통을 싣고 다니며 꼬막을 잡은 모습이 얼핏 한가로워 보이지만, 그 추운 맞바람 맞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농요로 토하며 삭이니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어머니의 잔상이 겹쳐 떠오른다. 어머니들은 그렇게 잡은 꼬막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아이들 대학교육 까지 시켰다니 갯벌이 옥답보다 나은 게 분명하다. 축제 중에 꼬막 까는 시합에 도전해보았다. 어릴 적 어머니를 도와 꼬막을 까보았기에 자신 있었다. 꼬막은 열리는 입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숟가락으로 넣어 틀어서 까야한다. 실버우수상을 받고 모처럼 상큼한 바다 냄새가 묻어나는 어머니표의 맛있는 꼬막도 원 없이 먹었으니 이만하면 흡족한 축제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그제야 조정래의 문학관에 들릴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갯벌은 캐나다와 미국의 동부해안, 북해해안, 아마존유역 등 세계 5대 갯벌 중에 하나로서 그중에도 부드럽고 질이 좋아서 세계 최고 품질이라고 한다.

갯벌은 많은 해양생물들의 산란 장소이자 생육장소로서 생물다양성의 산모(産母)이고 수산자원의 보물창고이다. 갯벌은 또한 자연의 콩팥이고 정화조다. 한 사람이 쏟아내는 하루의 배설량을 정화하려면 500마리의 갯지렁이가 필요하고, 대규모 인공 도시하수처리장 하나의 유기물 처리를 해내자면 갯벌 1평방km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총 동원되어야 한다. 갯벌이 발달된 서해안 지역에서는 적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은 탁월한 갯벌의 오염정화 능력 때문이라고 하니 누가 함부로 이를 훼손할 손가.

숲이 지구의 허파라면 갯벌은 지구의 신장이니 이 얼마나 귀한 자원인가. 세계적인 과학잡지(Nature)는 갯벌의 생산적 가치가 농경지의 100배, 숲의 10배에 달한다고 하니 이 아니 대단한가.

당황포 갯벌은 그 사이에 간척으로 흔적이 없어졌고 어머니와 나의 꼬막 잡이 현장은 아련한 추억만 살아있을 뿐이다. 여자만도 한 때에 간척 후보지였으니 어쩔 번 하였나. 내가 좋아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꼬막은 어디서 맛볼 수 있었을꼬.

  • 송구합니다. 좀 수정보완한다는 게 그만 다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댓글 달아준 교감님, 숙산님, 은산님 모두 송구합니다.
    수산 | 14-01-04 21:39 | 댓글달기
  • 내륙의 농촌에서 나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 서울로 전학한 뒤 인천으로 원족(=소풍)을 가서 바다를 처음 보았습니다. 당시 섬이었던 월미도로 다리를 건너갔지요. 썰물로 넓게 드러났던 갯벌이 돌아올 때쯤 전부 물에 잠기는 광경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뒷날 직장관계로 20대 후반에 부산에 가서 살면서 생선회를 처음 먹어보았고, 30대에는 울산, 40대에는 여수에 가서 살면서 바다를 많이 접하고 바다낚시도 해봤습니다. 특히 여수의 공장 앞 갯벌에서 아주머니들이 쭈꾸미를 잡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여수에서 맛들인 꼬막은 지금도 좋아합니다.
    김인택 | 14-01-06 14:10 | 댓글달기
  • ㅎㅎㅎ,  안양 1번국도 변에 여자 수산이라고 있습니다.
    늘 간판을 보면서 왜 여자 수산일까? 남자는 수산이 없나?
    저의 무식함을 수산님이 일깨워 주셨습니다.

    멀미를 많이 하시던 우리 엄마의 생각을 요즘 가끔 제차로 아름다운 광경을
    볼때 엄마를 떠 올리며 자가용으로 맘껏 다닐수 있었는데 ~~ 하는 아쉬움이
    뒤늦은 효의 한 가닥이었습니다.
    임성명 | 14-02-10 12:08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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