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민 2008-07-13 08:27:02
조회수 : 2,714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라는 대종사님의 말씀은 감사생활의 대상이 원망할 일 그것 자체인 것이다. 여태껏 조제민의 생각은 ‘원망할 일 속에서도 은혜로운 일을 발견하여 감사생활을 하자’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며칠 전에 깨달았다. 교통사고 나서 눈이 멀었지만 손발은 멀쩡하니 감사하자 라는 생각은 비록 감사생활의 모범적 태도이지마는 대종사님께서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던 의도는 그 정도 모범적인 삶의 태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다. 손 발 멀쩡한 것은 감사한 일이고 감사한 일에 감사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성이며 우리의 교리는 그 뜻 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대종사님 말씀의 뜻은 손 발 멀쩡한 것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눈 멀은 것 그것을 감사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교리가 의미하는 것은 원망할 일을 감사하라는 것 아닌가.
세상에! 눈 멀은 것을 감사해야 하다니... 아! 천지개벽과 같은 조제민의 깨달음...
그래서 감사하는 일은 삼학에 속하지 않는다. 취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교리도 상의 수행문에 들지 않는다. 감사하는 일은 신앙의 영역이므로 사은의 영역, 불공의 영역이며 교리도 상의 신앙문에 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때 무언가 따로이 감사거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제 뜻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 대로 하소서’ ---그냥 원망할 일 그 자체를 감사하는 것이다. 아니, 신앙하는 것이다.
저도 얼마 전에 깨달았습니다. 원망할 일 자체가 없다는 것을....
왜냐?
내 앞에 벌어진 모든일, 우주만유가 모두 우리가 신앙하는 법신불 일원상의 작용이고, 부처님의 화현인데 (처처불상 인데) 부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신앙하는 일원상 부처님을 원망하고 신앙하지 않는 모순이 있는것이지요.
자기가 믿고 신앙하는 대상을 원망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로지 원망할 권리는 없고 감사할 의무만 있는 것입니다. 김미선 | 08-07-13 13:55 | 댓글달기
- 怨望 이지요...
그러면 나머지 願望은 ... 바로 감사생활을 하자는 원력을 세우는 원망의 생활이죠..
怨望 에서 바로 감사로 가기도 하지만요...
- 원망 하는 만큼 돌리고 보면 감사의 힘도 크지요...
- 같은 원망 생활을 하지만 차이 있는 원망 생활이죠... 정현솔 | 08-07-14 18:07 | 댓글달기
감사합니다.
지금일어나는 일이 나를 살리는 일들 이라면...??
감사합니다. 오환칠 | 08-07-16 10:12 | 댓글달기
저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 글을 읽고 연마해 보았는데 제 생각에는 이 "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라고 하신 의미를 원망이나 감사에서가 아니라 "돌리자"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망은 당연히 원망이어야 하고 감사는 감사입니다. 원망에서 감사를 찾는 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소인같은 아주 하근기(아니 어찌보면 無근기라고 함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의 중생은 원망할 일에서 감사할 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무 과하지 않게 원망하고 그 원망의 소종래를 살펴보며 "돌려" 보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또 좀 더 제정신이 돌아온다면 원망할 일이나 감사할 일 모두가 원래 空하다고 배웠으므로 그 자리를 찾아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궁글려 볼 따름입니다. 물론 잘 안됩니다.
저에게 연이어 다가오는 경계가 또 다른 원망할 일과 또 다른 감사할 일을 쉴 새없이 쏟아내 놓으니 거기에 또 대응해 나가기 바쁜 탓입니다.
아! 이 어리석음이여!! 윤성욱 | 08-07-16 12:31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