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스승님 그늘 속에

이선조 | 2014-04-28 18:21:10

조회수 : 1,951

대산 종사님의 그늘 속에서

조정제

나의 서재에는 큰 스승님이 내려주신, “동그라미, 大山이라고 새긴 목판이 걸려있다. 동그라미는 붓글씨로 그린 것이라 미완성의 일원상一圓相으로 보인다. 나 같다.

내가 원불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60년 초반 군대를 다녀와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복학해서 다닐 때였다. 게시판에 그 당시 뛰어난 지성으로 알려진 철학과 박종홍박사님의 원불교와 종교철학이라는 강의가 원불교 종로교당(당시는 지부)에서 열린다기에 찾아가보았다. 원불교 교전을 뒤척이다가 거북이 모양의 교리도 중앙하단에 제시된 게송에 홀리고 말았다.

그 전에 혼자 공부하고 있던 불교의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를 강조하는 바람에 허무에 빠지는 것 같아 회의를 품고 있었는데 俱空 역시 具足이라는 말에 눈이 뻔쩍 띄었다. 텅 빈 속에 가득 차 있는 그곳이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현상계요, 적멸보궁寂滅寶宮이자 대적광전大寂光殿 같았다. 그즈음, 원남교당을 찾아들었을 때가 1964, 5년경이니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지 반백년이 다 되어간다.

원남교당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행정대학원에 다니면서 행정고시 준비에 전념하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일요일 오전 일반법회에 가서 법설을 듣고 끝나자마자 다시 도서관으로 향하는 일상을 보냈다.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한 시간 남짓이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보림保任하는 짬이었다. 그 보람인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에 다닐 때에 승타원 송영봉교무님 인도로 청년회와 청년연합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뒤 미국 가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와서 향타원 박은국교무님을 만났다. 그 당시 향타원교무님은 젊은 부부중심의 부설회를 만들었고 나는 초대 회장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우리 부설회 회원은 향타원법사님의 지도 속에 대산종법사님이 상주하고 계시는 신도안에 가서 큰 스승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리들은 처음으로 대산종법사님의 법문을 직접 받들었고 시자가 발로 굴리는 법륜대와 요가 시범을 보고 익혔다. 나도 그 때 선물로 받은 법륜대에 때가 저리도록 굴리고 굴렸고 지금도 곁에 두고 있다. 우리들은 야외 법 잔치를 마치고 대산종법사님을 따라 논둑길로 늘어서서 계룡산 계곡으로 향했다. 여자 교도들은 위쪽, 남자들은 아래 쪽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들은 인자한 大山할아버지를 모시고 계곡 물에 발을 함께 담그고 수박을 먹으며 법담法談을 나누는 은총을 누렸다. 그렇게 우리들은 자연과 법 잔치 속에 오롯이 큰 스승님의 따스한 훈증을 듬뿍 받았었다.

우리 교단이 신도안 터전을 국방부에 내어주고 삼동원에 갓 옮겨 갔을 때였다. 가설건물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리 내외가 인사를 드리자 돌맹이 하나를 선물로 내려주셨다. 키가 40센치 정도의 크기였다. 그 돌은 대산종법사님이 건강을 위하여 산에 다니며 약초도 캐며 주어온 것이었다. 나는 그 뒤에 서울서 이사를 다섯 번이나 하였으나 그 돌은 항상 챙기고 다녔다. 지금 기거하는 전원주택에서도 더불어 살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연못 속에 놓아두었다가 최근 연못 가 화단 위에 옮겨놓았더니 가까이서 자세히 요모조모 살펴볼 수 있어 더 친근감이 생겼다. 꽃에 물을 줄 때에 그 돌에도 물을 뿌려주었다. 어느 날 자세히 살펴보니 전면은 만물상으로 보였고, 뒷면은 고래가 입을 벌리고 하늘에 기도 올리는 모양이었고, 측면은 금강산의 뾰족한 신선암을 연상케 하였다. 대산상사님이 주신 그 돌은 꽃들과 더불어 물을 먹고 지금껏 자라고 있다.

나는 12년 동안 근무한 경제기획원을 그만 두고 1974년에 창설한 국토연구원에 해외과학자 초빙 신분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0년대 중반에 부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원장 자리를 놓고 외부에서 밀고 들어오려는 세력에 밀려서 낙방하고 말았다. 내 삶에 최악의 시련을 당하고 대산 종법사님이 계시는 완도훈련원으로 찾아가 뵈었다.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서 부원장직을 잘 수행하여라. 그러면 더 좋은 승진의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씀에 위안을 삼고 부원장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그 뒤에 KDI에 잠시 몸을 의탁하고 있는 터에 한국해운산업연구원의 제의를 받고 원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원장 취임 인사차 용궁 비닐하우스로 찾아가 뵈었다. 별로 말씀도 안 하시고 함께 걷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 손을 꼭 잡으시고 걷고 또 걸었다. 내게 2% 부족한 기를 불러 넣어주심 같았다. 손에 온기가 전해왔다. 그리고 19978월 문민정부 시절에 나는 드디어 해양수산부 장관직에 오르게 되었고 장관 재직 중에 서울시장을 만나 우이동수련원 허가의 물꼬를 트는데 미력을 보태게 된 것은 대산상사님의 큰 은총에 작으나마 정성을 표하게 된 것 같아 위안을 느낀다.

  • 화려한경력의 원불교 대선배님을 저희교당,아니 저희반에서

    모시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긍지를 갖게됩니다.

    그러데 장관재직시에는 오늘날과같은 어려운 경험은

    없었는지요?          정인국올림
    정인국 | 14-05-01 17:19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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