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조 2014-06-12 15: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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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플러스
이선조
행복이란?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 어떻게 행복으로 전환되었나?
지난 6월3일은 정녀들의 모임인 정화단 및 여성 교역의 날로, 교구 정녀 여성교역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행복한 삶을 이야기하는 축제의 날로 계획되었다. 모임의 화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테마를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다.
공교롭게 6월3일은 온 국민의 슬픔을 함께 초래한 세월호 침몰로 인한 희생자들 49재 날이다. 우리 40여 명의 정녀들은 하얀 법복을 입고 안산 화랑 공원에 차려진 국민합동분향소에서 추모 행렬을 하고 공원 옆 음악당에 식장을 마련하여 종재를 모셨다. 정녀들의 축제는 어느새 슬픈 넋들에 대한 추모제로 바뀌어 있었다.
잔잔한 오열을 하며 한 명 한 명 희생자 이름을 부르고 독경에 임했다. 작은 움직임이 희망을 이룬다는 노랑나비 리본이 물질위주로 망가진 인간 본심을 고쳐내며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 티 없이 맑은 소녀 ‧ 소년 영정 300여 영위 앞에 속삭였다. “너희 죽음은 필시 세상을 바로잡는 큰 울림이 될 거야! 이 엄청난 희생이 온 세계인에게, 모든 소망과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안전과 건강이라는 생생한 교훈이 되고 행동지침으로 이어질 거야.” 산사람의 이기심으로 나는 영혼들과 무언의 대화를 하였다. 3세 윤회로 생명과 소통이 되고 있는지? 정신을 차릴 준비는 되었는지?
영혼과의 대화로 기도하며 분향소를 나오는데 대책 없이 슬픈 영혼들을 대신한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슬픈 구름이 끼고 아픈 빗줄기가 내리는 안산 하늘 아래서는 밥 먹을 기분이 생기지 않았다. 배고픈 영혼들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수원까지 가서 교의회 의장님이 마련해 주신 순두부 백반으로 공양을 받았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토크 프로그램으로 행복 플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세대별로 소모임 형태가 반복되어 아쉽긴 했지만, 나는 60대 정녀님들을 모시고 행복에 대한 주제로 진행을 담당하였다. 포스트지에 각자 행복에 대한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자유 순서로 발표하기 시작 했다. 일단 말문이 열리자 진행은 순조로웠다. 행복은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자비심과 같은 것임을 시작으로 행복을 찾는 생각들이 오고갔다.
행복은 뿌듯함이다.
뿌듯한 느낌을 받을 때 얼마나 행복한 느낌이 오는가? 보람 있는 일을 보고 뿌듯하고 열심히 해낸 일을 보고 잘 성숙하고 있는 후배와 현장을 보면 얼마나 뿌듯해지는가? 행복은 일심이 되었을 때 생기는 힘이다. 일심이 되어 한 일이 얼마나 큰 은혜를 주던가? 일심이 되었을 얼마나 청정해지고 행복하던가? 일심이 되었을 때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발견하지 않는가? 일심 교화, 일심기도, 일심 정진, 일심독서, 일심보은, 일심연구, 이 일심 상태는 바로 행복을 잉태한 힘이다.
행복은 여유에서 생긴다.
마음에 걸림도 주착도 없이 한가할 때 행복을 느낀다. 부담 없이 편안할 때가 행복하다는 느낌이 온다. 여유를 즐길 때 기쁨이 샘솟고 행복해진다.
행복은 인내심 속에서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억울할 때, 힘들 때, 잘 참고 지낸 결과가 긍정적으로 돌아 왔을 때, 잔잔한 행복이 솟아난다. 잘 견뎌내며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행복은 내가 한 행동이나 말과 글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생기는 열정이요 보람이다.
나는 묵묵히 그게 옳은 일이라 정성껏 나를 내려놓고 일했는데 남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존경의 마음을 전해 주는 느낌을 받을 때 얼마나 행복한 맛이 나는가? 공들여 진솔하게 쓴 작은 글과 겸손한 말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화사하게 소통이 될 때 살맛나게 행복한 것이다.
점점 진지하게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우리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을 어디서 발견했던가? 고요한 명상 속에 은혜의 진리를 설하고 원력을 기도하고 문제를 상담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보람을 창조하고 인내하여 가능함을 자아낼 때 행복은 무한한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원불교 정녀 1호로 출가하신 공타원 조전권 종사는 문집〈행복자는 누구인가〉에서, 끊임없이 수행하며 중생에서 부처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행복자라는 전제로,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를 만난 행운을 말씀하셨다.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의 멘토가 되어주시는 회상과 스승을 만나 은혜를 발견하고 인과진리를 깨달아 지혜를 닦고 복을 장만하는 사람이 행복자라는 것이었다. 성현들은 중생들을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가르침을 주신다는 생각에서 나는 일상수행의 요법, 사은사요와 삼학 팔조 의 교법이 행복으로 가는 공부 길임을 다시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60대 정녀님들은 이제 몇 년 안 되어 정년을 맞게 되는 원로들이다. 정말 인생 황혼에 접어들며 전무출신의 길이 행복한 길이라며 다음 생에도 이 길이 내 길임을 깨닫게 되어 행복하다 한다. 오늘 행복을 찾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행복이 배로 플러스가 되었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속에서 늘 빛을 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80살, 90살, 혹은 100살이 되어 건강이 부실해지고 인연이 외로워지고 행복이라고 느꼈던 추억조차 바람 속에 섞여 흔적 없이 날아갈 때, 이 죽음 또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