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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양반 문화, 이모저모

수산 | 2014-10-16 20:40:01

조회수 : 2,262

                        선비‧양반 문화, 이모저모

                                                                            조정제

  부산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방학 때에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나에게 모시 한복을 입혔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웠으나 입기 버릇하여 잘 입고 다녔더니 어머니는 매우 좋아했다. 어머니 왈, 선비는 비가와도 뛰지 않는다고 했고, 할머니 말로는 함안 조씨(趙氏)는 말 마(馬)짜 몸으로 빠져나와도 양반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은 고조부 때부터 본향(本鄕)인 경남 함안에서 서쪽방향의 고성으로, 그리고 다시 바닷가 빈촌으로 밀려나서 대대로 농사지으며 살았으니 어찌 양반출신인 척할 수 있으랴. 하지만, 할아버지가 이 손자를 양반으로 잘 키우려는 소망을 상노인이 된 지금에 와서 생생이 느낀다.

  방학 때에 집에 돌아가면 할아버지에게 바로 예를 표해야 했다. 대청에서 먼저 큰절을 한 후 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편히 앉거라고 하면 양반다리로 바꿔 앉는 게 법도(法道)였다. 먼 친척은 대청마루아래서 인사를 했고 머슴은 꿇어앉았다. 할아버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손에 겹쳐들지 말고, 젓가락은 길게 잡아야 했고, 국물은 그릇 채 들고 마시면 야단쳤다.

  여의범절은 나라마다 다르다. 서양에서 악수는 물론 손등이나 이마에 키스를 하고 포옹도 서슴없이 한다. 태국을 비롯한 불교국가에서는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하와이에서는 서로 끌어안고 양쪽 볼을 번갈아 비비고, 뉴질랜드 마오이족은 코를 맞대고 두 번 부딪친다.

  가까운 이웃 일본도 우리나라와 제법 다르다. 일본문화, 특히 유교문화는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일본인들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중국에서 바로 들어왔노라고 우기는 이가 적지 않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가 대마도와 일본의 서남해안으로 흘러가 하얗게 쌓이는 것을 보면 저 옛날 돛단배가 그 방향으로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흘러갔으려니 우리 문화도 그 편으로 편승하여 전해졌으리라.

  일본에서는 상하를 막론하고 무릎 꿇는 예절문화가 보편화되어 있고, 체 경례도 90도 인사가 예사다. 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은 쓰지 않고 주로 젓가락을 사용하고 그것도 그릇 채 들고 입에 대고 후루룩 먹는 꼴이 쌍놈이 하는 짓거리로 보인다. 혹시 저 옛날 우리 양반들이 일본 상류사회에 예절문화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오랑캐 취급하고 해학과 풍류가 발동하여 쌍것이 행하는 예절을 전수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우리나라 고유의 선비․양반문화는 개화기에 새로운 서양문화에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6․25 동란을 통한 전국적인 피폐와 인구의 대이동 탓에 전통적인 토착․토호 세력의 지반이 흔들렸고, 1960~70년대의 개발 년대에 형성된 빨리빨리 병 때문에 송두리 채 허물어져버렸다. 중국집에 가면 자장면을 주문하자마자 빨리 내어놓으라고 득달하였다. 그들이 한국 사람을 피해서 태평양 건너 미국에 갔더니 거기까지 쫓아와서 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더라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싸우면서 건설하고 생각하며 행동했다. 경제개발계획의 목표는 항상 앞당겨 달성함으로써 소위 압축(壓縮)성장을 이루었고 그 결과 배고픔과 가난을 면하였다. 출퇴근 시간, 특히 출근시간 버스 타기는 살벌한 전장(戰場)이었다. 그 때 만원버스는 차장의 “오라이” 힘으로 움직였다. 버스가 저만치 오면 그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가 타지 못하면 다음 차를 타기 위하여 또 반대로 뛰어야 했다. 그렇게 몇 번 오가다가 제때에 타지 못하는 자는 결국 인생 낙오자로 점 찍히기 십상이었다.

  우리 개발연대 세대는 저 옛날의 예의와 염치, 그리고 여유와 해학이 깃든 정신적인 풍요를 저버리고 졸부 근성의 물질적인 풍요를 탐닉하고 말았다. 선비나 양반은 학식을 갖추고 걸음걸이도 여유가 있었으며 언행이 듬직하고 해학이 넘쳤었다. 어느 날 지하철이 막 떠나려는데 급히 타느라 닫히는 문에 끼일 뻔했다. 진땀이 났다. 명색이 양반의 후예가, 그것도 나이 70을 넘긴 노인네가 왜 이다지 서두르는가, 바쁘지도 않는 노인이 다음 차를 타도 아무렇지도 않는 주제에 그 무슨 경거망동인가, 자괴감이 치밀었다.

  모처럼 실버극장에 가서 이태리 영화 <길>이라는 흑백영화를 한편 보고 여유를 즐기며 화장실에 갔다. 모두들, 변기 앞에 서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그 뒤에 허리춤을 잡고 한사람씩 붙어 서서 기다리는 꼴이 볼썽사나웠다. 개중에 노인네라 소변을 쉽게 보지 못하는 사람 뒤에 서면 먼저 가 서있어도 차례가 늦게 오니 어딘가 합리적이지 않다.

  나는 용기를 내서 화장실 입구를 막아 한 줄로 서서 한사람씩 나오면 차례로 들어가게 하고 나도 순서가 되어 참은 것을 시원하게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하뿔사! 난 그만 소변을 마치고 아랫도리 단추를 채 채우지도 않고 돌아서서 엉거주춤 물러나왔고 손 씻는 것도 잊었으니 양반체면에 말이 아니었다. 뒷사람에게 빨리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 때문이 아니라 예의 그 ‘빨리빨리’ 습력(習力)이 생명력도 끈질기게 아직 나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래간만에 화려하고 번잡한 명동거리를 한가하게 여유를 부리며 걷고 있었다. 1970~80년대 개발연대 명동 풍경이 겹쳐왔다. 거리는 하늘로 치솟은 건물 때문인지 전보다 훨씬 좁아보였다. 보도에는 살찐 과객이 넘쳐나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들이 키가 한껏 더 커졌으니 거리가 좁아진 게다. 명동극장은 납작 엎드린 채 숨을 쉬고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애처로웠다. 저만치 건장한 젊은이 네댓 명이 가로 한 줄로 서서 쌍권총을 찬 서부사나이들처럼 당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옆으로 비켜서서 이놈저놈에게 치이며 간신히 피했다. “자식들! 종대로 서서 걷거나, 아니면 두 사람씩이라도 짝을 지어 걸어왔어도 괜찮을 텐데….” 나는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혼자 껄껄 혀를 찼다. 계속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내 구두가 밟혔다. 험상궂은 사나이가 꼬나봤다. 나도 모르게 “미안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그 젊은이는 사과라도 받았다는 듯 눈을 흘기며 호기롭게 지나갔다.

  미국 캠퍼스를 걸어보면 마주치는 사람에게 누구건 “하이!” 인사한다. 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저 개발연대에 서울 바닥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싸울 듯이 눈을 부라리곤 했으니 그 말이 쉬이 튀어나올 리 없었다. 명동은 아직도 거리 예절이 나아진 게 없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 은혜를 주고받는 관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서로 눈웃음으로 대하거나 손을 들어 보이는 여유와 배려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비․양반의 후예로서 체면이 서는 짓인가.

  요즘 우리나라는 언어폭력이 극에 달하고 있다. 막말은 대통령에게도 퍼붓고, 정치계와 각종 미디어는 물론 세상의 일상생활에도 난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언어폭력도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악성루머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혀는 세치에 불과하고 부드럽지만, 후벼 파고 뚫고 자르고 찌르고 베고 하는 것이 날선 스위스 주머니칼에 못지않다. 막말은 음속(音速)으로 총알처럼 날아들어 피할 수가 없다. 신체적 폭력은 얼마 안 가서 아물지만 내면과 영혼에 박힌 막말은 아프기가 더하고 평생 응어리로 남는다. 언어는 인격의 얼굴이고 마음의 표현이다. 성경에 “길들지 않은 혀는 불이요 독이 가득하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신부, 목사도 더러 막말을 쏟아내고 있으니 막가는 세상임에 틀림이 없다.

  한글은 유네스코 유일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우리나라 인류문화유산 중에 가장 빛나는 자산이다. 하지만, 우리의 말과 글이 시중에 요즈음 같이 쌍스럽고 천박하고 무작스럽게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 광화문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이 뿔내고 뻘떡 일어날 것만 같다. 이 한글 수난시대, 외국서 갓 온 다세대 가족이 쓰는 말이 더듬거려도 이해하기 쉬울 정도다. 그러니 조선시대 만들어진 한글도 그 시대 세종대왕의 훈민(訓民) 정신을 살려내고 나라사랑, 이웃사랑 하는 마음으로 순화될 수 없을까.

  우리 현세대는 오늘에 와서 의식주를 웬만큼 해결하였으니 이제 개발연대에 일시 일탈했던 빨리빨리 병근(病根)과 졸부 근성(根性)을 깨끗이 치유하고 우리 본래의 의연한 선비․양반의 모습으로 회귀하여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의식과 행동 속에 자리 잡아온, 선비의 품격과 지조와 염치를 드러내고 여유와 풍류를 즐긴 조선시대의 선비정신과 문화를 오늘날에 되살려 체질화하고 세계에 뽐내야 하리라.

 

 

          

  • 최근 신변 이야기를 다루는 수필 영역을 벗어나 유럽풍의 에세이, 다소 철학적인 수필을 써보려하는데 그 시작의 하나입니다. 수산 | 14-10-18 07:17 | 댓글달기
  • 단풍의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가을입니다.  책을 멀리하는 요즘 이렇게 인터넷으로 읽을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기대하겠습니다.
    임성명 | 14-10-20 16:10 | 댓글달기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꼭, 옛날 강의실에서 '버어트런드 러셀'의 지적 산고(知的 散考) 한편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너무 스마트폰 스타일의  장문(掌文)들 말고, 좀 더 내용이 있는 에세이운동이 지지를 받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김성규 | 14-10-22 14:18 | 댓글달기
  • 지적산고(知的 散考),  멋진 표현입니다.  수필이 신변잡기라는 평가를 뛰어넘어야겠는데, 그것이 어디 쉽겠어요.
    우리 함께 앞장 서 봅시다.
    수산 | 14-10-24 06:58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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