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2008-08-26 23: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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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날씨다. 여인의 마푸라 같은 흰 새털구름이 산 위에 높이 솟은 나뭇가지에 걸려서 서성이고 있다.
밤새 안녕 감 하나님! 서재 앞에 심겨진 감나무에 먼저 문안드리러 갔다. 작년에 심어놓은 감나무는 그 많던 꽃을 모다 허공에 날려버리고 감 하나만 매달고 끈기 있게 생명력을 버티고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보는 듯 하다. 감꽃이 떨어진 것은 아마도 아직 착근이 제대로 안되고 비료기운이 약해서인지 모른다. 감하나 나마 탱탱하게 커가고 있어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운지 모른다. 크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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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길은 작은 연못의 연꽃으로 향한다. 금년 늦봄에 심은 것이니 올해가 신행(新行)인 셈이다. 연잎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터에 5월 말경에 돋아나더니 7월 초순에 꽃봉오리가 맺혔고 광복절에 처음으로 만개했다.
하이 로터서(Hi! lotus.) 안녕 연꽃이여! 연 꽃은 아침 7시에 꽃이 피고, 태양이 중천에 솟아오르는 11시 전후 하여 봉오리가 닫히기 시작한다. 활짝 피었으되 청초하고 깨끔한 연꽃을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을 뜨는 사람이라야 만나 볼 수 있다. 만개된 모습은 그 시간대에 제대로 감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꽃은 오염되지 않은, 해맑은 아침 햇살 만 받아드리나 보다. 정오 이후에는 안 쪽 꽃봉오리가 닫히고 오후가 되면 봉오리 채로 봉해진다.
연꽃은 연록색의 꽃 싸개(또는 꽃받침)가 네댓 개, 하얀 꽃잎이 9~10개나 된다. 꽃 속에는 연밥이 공주처럼 맨 안방을 차지하고 있고 그 밖에 수많은 황금색 꽃술이 연밥을 에워싸고 있다. 네댓 마리의 벌들이 꽃술을 헤집고 꿀(?)을 찾고 있다. 나도 벌이 되어 젓가락을 넣어 보았다. 벌들은 젓가락이 들어가도 신경을 쓰지 않고 제 일 하는데 여념이 없다. 젓가락을 맛보아도 단맛은 나지 않았다. 연꽃이 단 꿀이 아닌 황금색으로 유혹하였나, 믿어지지 않는다.
연꽃은 4일이 지나면 꽃과 꽃술은 떨어지고 연밥만 남아서 종족보존 농사를 짓는다. 연밥의 방마다 씨앗이 살아 있다지 않는가. 연밥은 갈아서 먹으면 심장을 튼튼히 한다고 하니 심장 약한 나에게는 이래저래 도움이 된다.
연못 주변의 화단에는 작년에 국화꽃을 심었다. 국화는 올해 처음으로 붉은 계통의 꽃망울을 배시시 내밀고 있다. 화단에 야생화를 심어왔으나 철따라 번번이 갈아 심자니 돈도 들고 번거로웠고 늦가을에 피는 꽃이 없었던 터라 국화를 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비가 좋아한다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을 두루 갖추었으니 선비 흉내 내보는 맛도 그럴싸하다. 크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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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냄새 밭으로 올라갔다. 뒷산의 잡목을 좀 쳐내고 거기에 우선 가을배추를 50포기 심었고 나머지 공터에는 코스모스와 가을 야생화 씨를 뿌려 두었더니 코스모스가 키 자랑을 하며 먼저 솟아올랐다. 거기에는 모과, 사과, 배, 살구, 봉숭아를 두세 그루 씩 심어보련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충주의 세종농원을 찾아내서 묘목을 주문해두었다.
어제는 원불교 서울문인회에서 발간한 <소태산 문학>을 읽으려고 서재의 베란다로 나갔다. 한참 정신없이 독서에 몰두해 있는데 벌이 날아왔으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벌이 내 장만지를 쏘았다. 따끔했다. 피가 삐죽 나왔다. 별일 아닌 것 같아서 물린데 바르는 약을 대충 바르고, 저녁 7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어린이어깨동무>라는 NGO단체가 여는, 북한 어린이병원 건립의 모금을 위한 음악회에 참여하러 나섰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씨가 지휘하고 서울의대 관현악단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맡았다. 드보르작, 베토벤, 브람스의 곡이 연주되었으나 난 드보르작의 <신시계로 부터)만 귀어 익었다. 그러니 다소 지루한 가운데 엄숙한 연주가 진행되는데 왼발이 가려워서 발을 비벼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양말도 벗었다. 옆 사람 보기에 신사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벌에 쏘인 장단지가 퉁퉁 부어 있었다. 마누라가 병원에 가보자고 야단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분당의 한 종합병원의 야간 응급센터를 찾아갔다. 환자가 많아 난장판이었다. 양 엉덩이에 주사를 두개나 꽂고 항생제 주사 까지 맞고 3일치 약을 타왔다. 응급센터에서는 약을 그곳에서 바로 지어주는 게 신통했다. 의사가 퇴원하는 길에 더 가렵거나 붓거나 호흡에 지장이 생기는 듯 하면 다시 오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붓기가 많이 가라 앉아 있었다. 천번만번 다행이었다.
내가 즐겨 책을 읽는 2층 베란다가 그네들의 주거 생활공간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벌이 목조 집 널빤지 틈새에 집을 짓고 들락거렸다. 우리의 생활공간이 겹쳤고 벌과 공생한 형국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벌이 먼저 여기는 내 주거공간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하려나 보다. 벌님이여. 이제 송구스럽지만 전세를 거두고자 하오니 떠나가 주시지요. 그동안의 월세는 받지 않으리다. 당신은 여기 말고도 집 지을 데가 많고 자력으로 지을 수 있지 않소. 나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 당신이 양보해야겠소이다.
벌집은 송곳으로 파도 잘 파지지 않게 공고하다. 하지만 물총으로 쏘아대었더니 흙물이 튀어나오며 쉬이 허물어졌다. 흙으로 지은 집이었다.
안녕 벌님이여. 연꽃 속에서나 다시 만나보세.
☆맨뒤에 마누라의 <바닷가 풍경>은 미완성이었는데 이제 다시 올립니다. 그리고 화병은 미숙한 채로 그냥 올립니다.
꽃과 나비는 우리 아들이 찍은 것이라 올렸습니다.
벌에도 월세를 안 받으셨는데 저한테 시간세 달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연꽃 속에 연밥이 들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어릴 적에 연밥 많이 먹어 봤는데요. 꼭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벌에 쏘인데는 이제 괜찮으신지요? 최명찬 | 08-08-27 00:30 | 댓글달기
내가 젓가락으로 단 맛을 보려한 것은 나도 벌이 되어보자, 뭐 그런 속셈이엇는데, 벌 세게에서 환영하지 못하나 봐요. 넌 그냥 그 개만도 못한 인간계에 이전 투구하고 살아라, 그런 판결을 받았나 싶어요. 불상해라 수산이여! 수산 | 08-08-28 10:59 | 댓글달기
멋진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화 전원생활의 특혜가 아닐까요?
건강하세요. 유신화 | 08-08-27 17:34 | 댓글달기
연꽃의 자태는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전라도 무안에 연꽃 무더기를 볼 때와는 또 다른 감동입니다. 군락지에서의 연꽃은 커다랗고 화려한데 수산님네 연꽃은 청초함 그 자체입니다.
얼마 전 타계한 정원가꾸기의 마술사 '타샤'를 마치 현실 속에서 만나뵙는 것 같아요. 계절마다 장소마다 다르게 정원을 가꾸는 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진정어린 삶, 자연과 하나되는 삶이 엿보입니다.
벌에게 쏘인 상처는 얼추 나셨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연세 때문이신가 호들갑없이 벌과의 공존을 마무리하시는 모습은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시네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 제 생각은 한평생 서로를 공감해주신 자랑스러운 열매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김경애 | 08-08-28 19:12 | 댓글달기
꽃잎이 한잎 두잎 지드레도 너무 서운 하게 생각 마세요. 수산님 내년에는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곁에 다가올 거에요. 김경원 | 08-08-28 22:40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