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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2-29 09:32
좌선의 증험 (위삐니사나? 와 비교)
 글쓴이 : 이선조
조회 : 2,855  

질문>1. 좌선이 어떤 효과가 있나 44년을 원불교를 다녀도

잘 모르겠다. 위빠사나를 공부하면서 공부에 재미가 붙는 것 같다.

위빠사나가 더 좋지 않나?

좌선의 증험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린다.


이선조 12-12-29 09:37
 
1. 원불교 공부법은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하여 신앙과 수행을 병진하는 것이고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으로 길들여 낙원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좌선은 그 가운데, 신앙과 수행중, 정신수양에 속하고

정신수양중에서도 정기훈련과목 11개중 1과목입니다.

 

그러니, 좌선은 원불교 공부법에 작은 한 부분인데

이것을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위빠사나’와 비교하면

동등한 비교가 안됩니다.

 

둘째 이유는 좌선법은 좌선만 하는 것을 원불교에서는 금지합니다.

바른 공부법이 안 되요,

좌선만 열심히 해서 증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공부를 다 무너뜨립니다.


예전에 한 수행단체에서

벽에 점하나 찍어 놓고 일주일간 정신을 수양해서

초견성을 시켰는데 그게 공부를 망칩니다.

초견성을 하고 보니, 세상이 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요.


실생활에 쓰지는 못하고 세상에 나와서는 자만심만 차서

매일, 자기 견성한 것만 생각하고

다시 산에 들어가 정신수양하면 다 될 것 같거든요.

결국은 산으로 들어가 못나옵니다.

 

원불교 공부법이 어떤 공부법이냐 하는 것을 알려면,

위빠사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위빠사나는 부처님께서 깨치신 수행법입니다.

 

그런데, 왜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졌을까요.

그런데, 왜 불교가 한국에서 유교에 밀려 산으로 들어 갔을까요.

 

기독교, 유교는 세속종교입니다.

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종교인 것이죠.

불교는 세속을 떠나서 세속을 아름답게 지도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세속 가운데 공부법은 부족합니다.

출가중심인 것이죠.

세속은 고통의 바다요, 떠나야할 끊어야할 곳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당하던 기독교(19세기 다시세워짐), 유교도

과학문명 앞에서는 바람앞에 촛불처럼 무너졌습니다.

 

과학보다 무서운 종교가 없습니다.

믿음을 ‘생각’으로 전세계를 순식간에 통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당하던 과학문명도 스스로 무너지고 있고

대책이 없어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1억명 가까이 인류가

서로 살상을 했어요.

경제는 발전하는데, 빈곤율, 차별에 따른 갈등, 환경오염은

지구촌 전체를 위협합니다.

 

위빠사나가 세계를 이끈 것이 아닙니다.

불교가 세계를 이끈 것이 아닌 것이죠.

불교는 과학문명이 살려냈어요.

 

그 전제조건이 있는데,

대중화 생활화 시대화 조건으로

과학문명이 캐스팅 했습니다.

 

불교는 스스로 지구촌을 계속 이끌어온 것이 아닙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가 100여년이상 전부터

불교 원전을 번역하고 연구해서 세계 모든 불교를 발굴했고

미국에서 꽃피웠는데, 그 결론적인 수행법이 위빠사나입니다.

 

위빠사나가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첫째, 부처님이 도 얻은 수행법이라는 역사적 뒷받침

둘째, 묵조선, 간화선 등과 달리 정기훈련으로 현대인이 쉽게 할 수 있다는 점.

셋째, 공부한 효과가 금방 나타나고 쉽게 할 수 있다는 점.

 

원불교 공부법은 태생이 좀 다릅니다.

동학과 증산교에 이은 라인에 서 있습니다.

동학은 과학문명에 주목합니다.

과학문명은 순식간에 유불도의 전통으로 지켜진

아시아의 중심, 중국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새로운 사태에 유교, 불교, 도교가 힘없이 무너지는 이 사태에 대응할

새 공부법으로 ‘동학’이 설계된 것입니다.

 

동학의 교조이신 수운 선사는 일원의 진리로만 세계를 구하고

새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에 죽을 것을 알았지만

새공부법을 3년간 전수하고 참수되었습니다.

그 정신을 이어 2백여만명의 공부인들이 개벽세상을 위해

나가서 싸우며 생명을 바쳤습니다.

 

원불교의 화두는 명상을 잘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나

영혼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보다도

이 새로운 사태, 개벽시대를 열어 제친 과학문명을

조정하고 부려 쓸 도덕문명을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동학과 증산 선사의 문제의식에 서 게 된 특징이 있습니다.

위빠사나가 아닌 2천5백년 불교를 다 털어도

유교, 도교를 다 가져다 해도 안 될 이 과학문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인선진께서 왜 세상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법계에서 인가했을까요.


원불교는 일원주의로 교법을 열었는데

유불도의 ‘진리’와 같지만

새시대에 따라 새롭게 천명된 것입니다.

과학문명을 흡수했습니다.

 

‘성품’이나, ‘정신’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뒷받침될 ‘우주만유의 본원’으로

또 모든 종교와 성자들을 하나로 받들 ‘제불제성의 심인으로’

또한 세상만민이 받아들일 ‘일체중생의 본성’으로

‘일원주의’가 탄생한 것입니다.

 

사은신앙으로 신앙을 ‘과학화’시켰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진리를 보인 것입니다.

삼학으로 수행을 ‘과학화’시켰습니다.

 

과학문명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신수양’이 없습니다.

과학문명을 만들어낸 근대철학, 근대물리학에는 정신수양이 없습니다.

 

또 우주윤리적인 사리연구가 없어요.

대소유무는 논리학이면서 인격을 완성시켜가는 수행 틀입니다.

사리연구에는 도학과 과학의 연구법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서구 근현대철학을, 과학문명을 간단히 일원주의로 다시 세운 것입니다.

원불교 사리연구는 실사구시로 천가지 만론의 생각법이 통합된 것입니다.

 

작업취사도 이론적인 윤리학이 아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일원주의가 서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위빠사나가 출가자들이 성불하도록 수행법으로 설계되어 있던 것을

과학문명이 한계에 봉착하니까 예전 것을 가져다가

좀 쉽게 만들어서 복원을 했는데,

 

원불교는 새로운 사태, 개벽시대에

과학문명에 맞게 진리와 신앙과 수행을 새롭게 설계한 것입니다.
이선조 12-12-29 09:48
 
다시 앞의 주제로 돌아가서

원불교 공부법은 좌선과 위빠사나를 비교하면 안되고

원불교 공부법 전체와 위빠사나를 비교해야 하는데,

좌선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것은

 

일상수행의 요법에 1조를 실행해보는 것입니다.

또 상시응용주의사항에 1조를 실행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문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 좌선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좌선의 강령은 쉽고 간단한 것입니다.

 

요즘  눈이 와서 빙판길인데,

온전함을 챙기는 것이 없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좌선의 공덕은 이처럼 누구나 쉽게 항상 생활 속에서

그 공효를 알 수 있고 챙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좌선만 해서 무슨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거나

증험을 얻으려고 한다면 원불교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이 좋으면 무엇을 할까요.

44년을 원불교를 다녀도

대종사님께서 정기 동하 6개월 훈련을 말씀하셨는데

정기훈련이 안되면, 아무리 오래 다녀도 효가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정기훈련을 해야 공부법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시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정기훈련을 안하면 상시훈련도 안되고 일상수행도 잘 안되죠.

그러면 100년을 다녀도 안타까운 것입니다.

 

위빠사나는 2박3일부터 한 달코스까지 있죠.

하루 14시간 선을 하구요.

그렇게 오래 하니까 좀 틀이 잡히는 것이죠.

 

그런데 원불교는 법회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집에서 평소 교리공부도하고 선도하고
교당에서 선방도 참여하고
정기훈련도 나시고 해야합니다.
유신화 13-02-20 09:5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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