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는 종교로서 다른 기존 종교와는 달리 교리도에 인과보응의 신앙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은이 신앙문에 들어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사요'가 신앙문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할 것 입니다. 과학이 아주 발달하는 후천에 로봇 세상이 도래할 것이므로 현재 상태의 인류가 나중에 존재할지는 의문입니다. 원
신도광20-06-28 07:56
오래만에 제가 연마한 내용을 올립니다.
저희가 일원상을 신앙하는 이유는 신앙적 측면에서 늘 사은님에 대한 감사를 항시라도 잊지않고 느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한없는 사은님의 은혜를 늘 느낀다 하지만 그 은혜를 항상 인지하고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은님의 은혜는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무한한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우리 중생은 늘 인지하기가 어렵죠. 그러니 그 무한한 사은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느낀다면 그에 대한 보응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일원상의 신앙을 인과 보응의 신앙문이라 표현한 것이며 우리가 받은 은혜에 보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받은 무한한 사은에 대한 보응으로 정한 것이 사요이며 여기에서의 사요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약간씩 변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요는 신앙문으로써 사은의 무한한 은혜를 보응하는 측면에서 사요가 들어간 것이며 이것이 일원상을 신앙하는 신앙문으로서 한축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결국 신앙문과 수행문은 같은 것이며 단지 일원상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앙문, 수행문으로 설명해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