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마다 참 난처한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대부분의 질문들이 교화의 중심지인 교당의 위치를 묻는 말임에 분명하지만 기실은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 무소부재한 것이고 보면 이 세상 어디든 교당 아닌 곳이 없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교화활동이 이뤄지는 장소는 주로 교당이다. 교당은 기독교의 교회나 불교의 사찰, 포교당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당은 사찰과는 달리 교도들의 생활터전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물론 기독교나 가톨릭 등의 교회는 예전부터 그래왔고 불교 또한 최근에 와서는 도시의 한 중심가에 포교당을 만들기도 하는 실정이니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별다른 특징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교단 초창기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이 교당을 사람들의 생활터전과 밀접한 자리에 위치하도록 한 것은 원불교 교법정신의 중요한 한 대목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불교의 모습을 보면서 "종교는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인간이 없는 산간에 교당을 두면 세간생활에 분망한 사람들이 어느 여가에 세간을 벗어나 그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한 교당이라면 마땅히 그들의 생활터전과 가까워야 하고 수도하는 처소도 신자를 따라 어느 곳이든지 설치되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모름지기 교당이란 인간 삶의 현장에 자리잡고 종교적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으나 깊은 산 명당에는 어김없이 사찰이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자리를 잘 잡았는지 경탄스러울 때가 많다. 경관도 경관이려니와 풍수지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스님들이 터를 잡았으니 절은 산으로 인해 빛나고 산 역시 절로 인해 빛난다.
그동안 사찰이 있어 깊은 산 명당에서 정신적 샘물을 퍼 올려 주었으니 숱한 내우외환에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지탱되어오지 않았나 싶다.
절에 가는 길은 운치 있는 산길이고 땀흘려 도착한 절에서 맑은 약수로 목을 축이고 대웅전에 들어가 큰 절을 세번 올리고 나면 맑은 바람 퍼지는 풍경소리, 목탁소리, 향내음은 속진 번뇌를 단숨에 씻어가 버린다. 답답한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한 교당의 모습이나 시끄러운 상가건물에 전세로 힘겹게 자리잡은 교당의 모습을 바라다보면 산사의 한가로움과 넉넉함, 고즈넉함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경치를 따지지도 않고 명당을 따지지도 않는 원불교의 교당 터잡기를 생각하노라면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가승(假僧)은 입산(入山) 하고 진승(眞僧)은 하산(下山)한다"는 옛스님의 말씀과 "중은 산에 있는 것이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다. 두 입장은 극명한 대립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모두 충족시키려면 입산도 하산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든지 입산과 하산을 계속 반복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입산과 하산은 가승과 진승을 구분하는 잣대이기보다는 실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단계적 지향을 나타낸 말이거나 공부(理)와 일(事), 순수와 참여, 보수와 진보의 또 다른 표현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원불교는 분명 하산의 입장에 선다. 원불교의 여러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건물인 교당은 주로 저자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도 경치 좋은 한가한 곳에 여러 훈련원과 요양시설이 있고, 불교도 많은 포교당이 저자거리로 전진배치(?)되고 있다. 이제 건물이라는 하드웨어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에는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이 시대의 논의는 차라리 앞서 이야기한 터 잡기의 철학(?)에 초점 맞춰져야 할 일이다. 왜 생활의 중심지에 교당을 두라고 했는지 그 본래 목적에 충실한 기능을 실행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일이다.
교통과 통신의 눈부신 발달은 종교적 시설의 위치가 가지는 경향성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그 시설의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경향성이 문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