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보면 종교는 사치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더군요.
보기에 따라서는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들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일요일 법회를 보거나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말쑥한 차림에 얼굴에는 미소와 평화스러움이 배어 있을테니까요.
얼마나 여유롭게 행복해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분들 역시 보통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어울려 사는 우리의 이웃들 아닙니까.
다른 사람보다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활이 곤궁한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불심이 장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찌나 가난했던지 끼니도 어려워 도저히 불단에 무엇을 놓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 그 사람은 참으로 어렵게 동전 한 닢을 장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큰 돈을 기부하고 휘항찬란한 장엄으로 부처님을 기리는데 그 분은 너무도 부끄러워서 깊은 방이 되기를 기다려 살며시 그 동전은 불단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뻐서 몇 십리나 되는 어두운 밤길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왔습니다.
후일 그는 큰 광산을 발굴하여 대 재벌이 되었는데, 그 광맥이 그 분이 춤을 추며 걸어온 길의 길이와 같았답니다.
그래도 과연 종교를 사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인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그 어는 때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치관의 혼란과 물욕으로 정신의 가난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종교는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교는 자비로, 그리스도교는 사랑으로, 원불교는 은혜로써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무엇을 가지고 있다해도 병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돈도, 명예도, 학식도, 권력도 마음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오히려 죄를 짓는 도구가 되어 남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결국 자신을 망치기도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하셨습니다. 정신의 자주력을 기르는 법, 마음을 잘 쓰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음공부 잘하여 새 세상의 주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