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의 진리를 대개 허황한 관념으로 생각하는 수가 있는데, 인과의 진리는 실재합니다.
어떤 사람이 가게 앞을 지나다가 진열된 물건을 보고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서 예의와 염치가 없이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간다면 분명 욕을 보든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물건을 보고 일어난 잘못된 생각이 인(因)이 되어, 그 결과가 욕을 보거나 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농부가 열심히 땀흘려 농사일을 하면 가을에 수확을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다 인과에 의한 축복인 것입니다.
고창에 김양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갑자기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서 의지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이때 이웃 마을에 과수댁 한 분이 있었는데, 어린 김양배를 데려다 일도 시킬 겸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꼬마머슴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가 장성하자 과수댁은 몸소 신부감을 물색하여 결혼을 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결혼 날이 되어 김양배는 그곳에서 10리나 떨어진 마을에 있는 신부댁으로 장가를 갔습니다. 장가드는 날이었기 때문에 잔치야뭐야 하여 밤 1시경까지 일을 끝마치고는 늦게 잠자리에 막 들려고 하는데, 우두둑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심한 봄 가뭄이 계속되던 때라 이 비를 놓치게 되면 농사를 망칠 우려가 있었습니다.
김양배는 장가간 첫 날 밤 그것도 한 밤중임에도 불고하고, 그곳에서 10리나 떨어져 있는 과수댁의 논에까지 달려와서는 논마다 물고를 막고 처가에 돌아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한편 과수댁은 머슴을 장가 보내느라고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치고 고단하여 세상 모르고 자고 일어나 보니 밤에 단비가 내린 뒤였습니다. ‘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필 오늘 비가 올게 뭐람’하면서 삽을 들고 논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일이 웬일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논에는 물이 별로 없는데 자기의 논에만 물이 가득했습니다.
‘참 이상도 하다. 도깨비의 장난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날이 가물다 비가 오면 농사가 잘 되는 법이라, 그 해에는 다른 해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도록 과수댁은 그때 논물을 누가 막았는지 궁금하였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해에도 농사를 잘 지어놓고 칠월 백중날 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다가 과수댁은 무심코 ‘누가 그 물고를 막았을까.’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김양배의 부인이 빙긋이 웃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과수댁이 다그쳐 묻자 그 부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신혼 첫 날 바의 일을 말하였습니다.
비로소 여러 해 동안 풀지 못했던 궁금증이 풀린 과수댁이 왜 그래 놓고도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김양배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과수댁은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하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그 때 논물을 막아주지 않았으면 폐농은 면치 못했을 것이고 잘 해야 평년작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평년작을 했다고 가정하고 그 이상의 수확은 순전히 머슴 덕이다. 그러니 그것은 그 사람 앞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 과수댁은 다음날 평년작 이상의 소출을 원금으로 이자를 계산해보니 270석이 되었습니다.
과수댁은 김양배 부부를 불러 놓고, “자네 덕분에 나는 이제 부자가 되었네. 더구나 그때 그토록 고마운 일을 해 놓고도 지금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자네 부부가 이토록 내 살림을 열심히 해 주어 고맙네. 그런데 그 때 자네가 막아준 논물 덕분에 더 수확을 하게 된 것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자네 것이니 자네에게 되돌려 주겠네. 그때부터 계산해보니 270석이고 거기다 고마워서 내가 30석을 더 보태 300석을 자네에게 주겠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잠들기 직전 그것도 장가든 첫날밤에 10리나 떨어진 먼 곳까지 가서 논에 물을 막고 온 고마운 마음씨가 몇 년 후에 쌀 300석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저 좋은 선업(善業)을 행하기에 노력할 뿐 그 댓가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갑니다.<인과의 세계, 191쪽)
인과는 그 즉시 돌아오는 것도 있고, 곧바로 받지는 않아도 시간이 흐른 후에 받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자기가 지은 업은 받드시 자기가 받게 됩니다. 내 것을 남에게 줄 수도 없고, 남의 것을 가져 올 수도 없으며, 더 주거나 덜 받을 수도 없어서 지은대로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