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라는 자동차 회사에서 "B"라는 멋진 신형차를 출고했다. 소비자들은 그 차를 볼 때마다 "A"회사의 차라고 하기도 하고 간혹 사장의 이름을 대면서 그의 차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차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자신들이 기억하기 편리한 대로 가장 쉽게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인식의 저편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망각하고 있기 십상이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는 수만개의 부품들이 필요하다. 그 부품들은 거의 대부분 여러 중소 납품업체들을 통하여 납품된 것들이다. 게다가 디자인과 고급기술은 외국에서 수입된 값비싼 대가일 수도 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B"라는 차가 꼭 "A"회사의 차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B"라는 차가 단순히 "A"라는 회사의 차라기보다는 "A"회사의 차인 동시에 수많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노력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B"라는 차를 "A"회사의 차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차가 "A"회사의 독특한 정신을 담아 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시원을 이야기할 때도 이러한 현상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느 종교건 간에 그 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종교의 탄생 배경이 되는 또 다른 종교와 사상들이 나타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민중들의 적나라한 삶이 그 종교에 투영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성경 말씀이나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새롭다"는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는 서로 상반된 표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일한 의미의 이야기인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톨릭이 나오고 또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교가 나온다. 유대교 역시 그 시원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러한 현상은 그 밖의 종교 일반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고 세상이 혼란해질 때마다 그 질서를 바로잡고자 나타난 성자들에 의해 형성된 각 종교들의 정체성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종교의 탄생이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 땅에서 솟아오르듯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불교, 기독교, 동학, 원불교 등은 석가모니, 예수, 최수운, 박중빈이라는 종교적 성인들의 출현으로 탄생의 핵심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기존의 종교적 형식이나 틀을 과감하게 혁신하여 거대한 변화의 충격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조 말 한반도 남쪽의 한 빈천한 시골마을에서 탄생한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은 26세의 나이로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원불교의 문을 열었다.
일찍이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제도가 그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하였고 수많은 민중들이 여기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의 신종교 사상은 우리의 전통사상과 앞서간 종교적 선지자들의 경륜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었고 인류의 역사 발전 과정에 대한 탁월한 이해 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키 180㎝ 몸무게 90㎏의 원만한 풍모를 가지셨던 분, 전라도 영광지방의 사투리를 심하게 사용하셨던 분, 비빔밥을 무척 좋아하셨던 분, 소태산 대종사.
원불교는 서기 1891년 전라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에서 태어나 20년의 구도 끝에 깨달음을 얻고 다시 혼탁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오신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 바로 이 분에 의해 출발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