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자신에게만은 괴로운 일이 생기기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힘든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절대자를 탓하게 되고, 신앙심이 물러나게 됩니다. 알고 보면 과거 전생에 자신이 지은 바대로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여기 평소에 법을 잘 지키지 않고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죄업이 무거운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모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사람을 위하여 극락에 가도록 기원했다 할 때, 그 기도의 공덕으로 죄를 면하고 그 사람이 극락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연못에 큰 바위 돌을 던져 넣고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기를 “바위야! 바위야! 떠올라라.”하면 그 바위가 물위로 다시 솟아오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생에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참회를 하였다 할지라도 과거에 지은 죄업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죄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쌓아 갈 힘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도들이 신심 깊은 교도 조추연의 외아들 해룡이 요절한 것을 보고 “진리도 무심하시지. 그런 집 귀한 외아들이 죽다니…….”하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정산종사님께서는 “부모 운명은 부모 운명이고 자녀 운명은 자녀 운명이다. 인생은 서로 나그네요, 여관방에서 자고 가는 것 같이 허망한 것이다. 지은 업을 받는 데는 부모와 자녀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이나 내가 인식할 수는 없지만, 지은 바에 대한 결과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는 지금 복을 지어야 합니다. 교당은 복 지을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복 짓는 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