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중고상품을 살 수 있을까? 백화점에 가보면 모든 상품들이 정말 새롭게 반짝거리는 것들 뿐이다. 백화점에서 "이거 새 겁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그곳에는 새 것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고품을 취급하는 가게일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소비자는 "이거 오래된 것 아니예요?"라고 묻기를 서슴지 않는다. 주인 역시 "오래된 것 아닙니다." "아직은 쓸만 합니다."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부분 새 것이 좋다고 믿는다(물론 골동품 같은 것들은 오래된 것 일수록 값이 더하지만). 대부분 새 것 일수록 외형도 아름답고 질적으로도 더 많은 기능들이 첨가되어 우리에게 편리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역사 속에서 갈고 다듬어진 전통사상이야말로 미래를 가장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 삶과 오랜 역사를 같이 해온 종교들이 우리에게 더 편안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원불교를 낯설어 하는 이에게 원불교를 이야기하면 "오래 되었나요?"라고 묻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아마 종교의 역사성을 묻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각종 신흥종교가 난무하는 우리의 세태 속에서 그 종교의 신용을 확인하는 절차인 듯도 싶다.
이런 질문에 마치 상품 판매원처럼 "아니 새로운 종교예요. 아무래도 새로운 것이니 좋잖아요. 한번 믿어 보시죠."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어느 종교가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왔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의 가르침을 필요로 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된 종교 = 좋다"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이해는 자칫 권위주의에 떨어져 맹신을 만들어내기 일쑤이다.
수천년 된 종교들도 창교 당시엔 새로운 종교운동이었을 뿐이고, 기성의 종교적 전통과 권위에 의해 이단으로 몰렸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무조건 오랜된 것이 좋다."라는 등식은 맞지 않는다.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가진 진리적 종교는 그 자체가 그 종교에 대한 믿음을 어느정도 보증해 줄 따름이다.
"오래된 것이냐?"는 질문에 담박하게 "80년 되었다."라고 답하기는 쉽다. 그러나 거기에 부질없는 선입견이 뒤따를까 싶어 장황한 이야기를 한 셈이다. 80년의 역사는 꽤 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종교사적 입장에서 보면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부처님 열반 후 100년까지는 교리체계 조차 제대로 틀 잡히지 않았고, 기독교 역시 100년까지는 미약한 교세를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며 깊어지는 장맛을 생각한다면 아직 원불교는 더 익어야 하고 더 깊어져야 맛이 날 것이다. 아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며 부글부글 끓기도 하고 소리없이 발효하기도 해서 좀더 깊은 맛을 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장맛 좋은 집안과 같이 만들어 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