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신통력은 어떤 것인지요? 혹시 이산도수하고 축지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원불교에서는 부정적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정법 회상에서 신통을 귀하게 알지 않는 것은 신통이 세상을 제도하는 데에 실다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해가 되는 까닭이니, 어찌하여 그런가하면 신통을 원하는 사람은 대개 세속을 피하여 산중에 들며 인도를 떠나 허무에 집착하여 주문이나 진언(眞言)등으로 일생을 보내는 것이예사이니, 만일 온 세상이 다 이것을 숭상한다면 사농공상이 무너질 것이요, 인륜강기(人倫剛氣)가 묵어질 것이며, 또는 그들이 도덕의 근원을 알지 못하고 차서 없는 생각과 옳지 못한 욕심으로 남 다른 재주를 바라고 있으니, 한때 허령으로 혹 무슨 이적(異蹟)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세상을 속이고 사람을 해롭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신통을 말변(末邊)의 일이라’하였고, ‘도덕의 근거가 없이 나타나는 신통은 다못 일종의 마술(魔術)이라’고 하였나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도(正道)를 잘 수행하여 욕심이 담박하고 행실이 깨끗하면 자성의 광명을 따라 혹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자취가 나타나는 수도 있으나 이것은 구하지 아니하되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어찌 삿된 생각을 가진 중생의 견지로 이를 추측할 수 있으리요.”<대종경 수행품 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새 세상의 도인들은 신통을 쓸 필요가 없으며, 과학의 모든 문명이 신통이라고 하셨습니다.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28>
원불교에서 배우고 익히는 신통력이 있다면 마음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은 수행자의 기본이며, 가장 평범한 진리입니다.
여의보주가 따로 없으니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하고 보면 곧 이것이 영의보주인 것입니다.
교당에 다니면서 마음을 자유자재하는 신통력, 여의보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