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로 갖은 수난과 탄압을 받았습니다. 종교단체도 예외가 아니어서, 친일 단체가 되거나 아니면 일제의 탄압에 정면으로 대치하여 탄압을 받거나 아예 종교 말살정책으로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민족 종교에 대한 탄압은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민족 종교는 독립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민족의 단합과 정기를 불어넣는 일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불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30년 이후에는 아예 총부에 주재소를 설치하여 총부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한편 예회시간에도 직접 참여하여 모든 언동을 감시하였고, 회계문서까지도 검열을 하였습니다.
대종사님은 제자들에게 늘 좋은 세상은 곧 돌아올 것이라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제자들과 함께 일제의 갖은 회유와 압력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원불교의 대표적 활동으로는 첫째, 길룡리 간척사업의 성공으로 일제의 무언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맨손으로 길룡리 앞 갯벌을 간척함으로써 단결된 힘과 경제력을 확보하게 되니, ‘혹시 독립운동단체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하여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강자약자진화상의 요법과 자력양성 등의 가르침을 통해 국민정신계몽 운동과 새생활 운동을 하였습니다. 셋째, 대종사님께서는 늘 좋은 세상이 곧 도래한다며 희망과 용기를 심어 두셨습니다.
그리고 구산 송벽조 선진님이 일황에게 상소문을 올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종사님과 정산종사님 등이 많은 고초를 받았으며 교단에 대한 감시가 더욱 심해지기도 하였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서울, 부산, 익산, 전주 등에서 전재 동포 구호 사업을 전개하여 수많은 전재 동포들에게 잠자리, 식사, 의복 등을 제공하고 치료를 해주었으며, 보육원을 설치하여 고아들을 보육하였습니다.
그리고 국민 계몽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습니다. 전국에 야학교를 설립하여 한글을 보급하고, 국가 발전과 국민의식 향상을 위한 지역별 사상강연회를 무수히 개최하였습니다.
원불교는 일제하에 교단의 힘은 약했으나 종교 본연의 입장을 지키면서 정의와 민족 해방을 위한 일을 소리 없이 전개하여 많은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