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모습은 불공하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불공은 마음의 안정과 복락을 구하고, 법신불 상은의 보살핌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를 올리고 기도하는 것을 진리불공이라 하고, 이 세상 모두가 죄복의 권능을 가진 부처님임을 믿고 항상 공경하고 받드는 것을 실지불공이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변산의 초당에 머무르고 계실 때에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내외가 지나던 길에 쉬어 가게 되었습니다.
대종사님은 그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몹시 힘들어 뵈는데 노인들께서는 어디에 무슨 일로 가시는 길입니까?"
"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우리 집며느리가 성질이 못돼서 시부모 알기를 원수처럼 생각하고 불효가 말이 아닙니다. 참다 못해서 부처님께 불공이나 드려볼까 하고 실상사에 가는 길입니다."
노인들의 신세 한탄을 듣고 보니 과연 불효 막심한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아들과는 금슬이 좋고 손자까지 낳은 며느리를 쫒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노인들이 부처님의 힘을 빌리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한숨을 쉬며 오르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대종사님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노인장께서는 쇠로 만든 부처에게 불공할 줄 알면서 어찌 살아 있는 부처에게는 불공드릴 생각을 안 하시오?"
"살아있는 부처라니 그 부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노인들은 산부처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노인장 집에 있는 며느리가 바로 산부처입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안하고는 그 며느리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어떻게 불공을 한단 말입니까?"
"노인장께서 불공 드리러 가는 그돈으로 며느리가 좋아하는 선물도 사다 주고 며느리를 오직 부처님 모시듯이 진심으로 공경해 보시오. 그러면 반드시 효과가 나타날 것이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던 노인 부부는 그 길로 장에 가서 며느리가 좋아할 만한 옷이며 다른 물건들을 사 가지고 집에 가서 며느리를 불러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선물을 주었습니다.
며느리는 처음에 ‘노인들이 무슨 변덕이람’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시부모님들이 자기를 생각해 주는 것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고는 그만 감동하여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들은 다시 대종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대종사님께 인사를 올리고 자신들의 며느리가 세상에 둘도 없는 효부가 되었다고 자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며느리가 산부처라는 이 가르침은 ‘곳곳이 부처님이시니 일마다 불공하자(處處佛像 事事佛供)’는 실지 불공법입니다